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는 학생이 ‘사회 5-1’ 교과서에 나온 ‘유물로 본 고조선의 세력범위’라는 지도를 보고는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 아닌가요?”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도에서 현재의 남한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세력범위 밖에 있으니 의문이 생겼던 모양이다. 이 교과서는 저작권자가 교육과학기술부, 편찬자는 한국교원대학교 국정도서사회편찬위원회인 국정교과서다.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라는 개천절 노래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단군은 ‘겨레의 시조’ 내지 ‘국조(國祖)’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교과서에 남한은 고조선의 범위 안에 있지 않고, 그 이유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모든 교과서의 고조선 세력범위 지도에서 남한 제외
현재 국정교과서인 초등학교 ‘사회 5-1’ 23쪽에는 ‘유물로 본 고조선의 세력범위’라는 제목의 지도와 함께 탁자 모양의 고인돌,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의 사진이 실려 있다, 본문의 설명은 이렇다.
“고조선은 한반도 북쪽 지역과 중국의 동북쪽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곳에서는 비파형 동검과 탁자 모양의 고인돌, 미송리식 토기가 많이 발견된다.”
검정교과서인 비상교육편 중학교 ‘역사1’ 39쪽에도 거의 같은 모양의 지도가 실려 있다. ‘고조선 관련 문화 범위’라는 제목을 붙였고, “비파형 동검과 탁자식 고인돌은 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어 고조선 관련 문화 범위를 알려 준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중국식 동검, 비파형 동검, 세형동검과 거푸집의 사진도 함께 게재돼 있다. 미송리식 토기 사진에는 “청천강 이북, 랴오닝성과 지린성 일대에 분포하여 고조선 관련 문화 범위를 짐작하게 해 주는 유물 중 하나”라고 설명돼 있다.
역시 검정교과서인 비상교육편 고등학교 ‘한국사’ 20쪽에서도 같은 그림과 설명을 만날 수 있다. 본문에는 “고조선은 랴오닝 지방과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면서 발전하였다. 이 지역은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탁자식 고인돌이 많이 분포되어 고조선의 세력권을 짐작하게 한다”고 되어 있다.
다른 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유물로 본 고조선의 세력 범위’ 혹은 ‘고조선 관련 문화 범위’라는 제목으로 남한 지역을 고조선 세력범위에서 제외시킨 지도가 실려 있다. 비슷한 지도가 과거 중·고등학교 국정 국사교과서에도 게재되어 있었다.
◆같은 유물이 나온 남한과 중국 만주·톈진(天津) 지역은 빠져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고, 설명을 곱씹어 보자. 지도는 비파형 동검과 탁자식 고인돌의 분포 지역을 표시해놓고, 두 유물의 분포를 통해 고조선 관련 문화 범위를 알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도를 포함한 남한과 중국 만주의 랴오허강 상류 지역, 허베이성의 영정하 하류 톈진(天津) 지역에서도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으며, 남한강과 북한강 유역에서 탁자식 고인돌이 출토된 것으로 표시하고 있다. 교과서의 설명대로라면 당연히 남한과 중국 동북부 지역도 고조선의 범위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어찌된 일일까. 교과서를 편찬하는 기준이 되는 교육부의 지침(교육과정, 교과서 집필 기준, 교과서 편수자료)을 확인했다. 고조선의 세력범위와 관련해서 2012년 배포된 교육과정에는 구체적인 지침이 없고 2009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한반도와 주변지역’, ‘한반도와 요동, 만주 지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환경을 소개하고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적과 유물을 통해 고조선의 대체적인 세력 범위와 문화권을 이해하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남한 지역을 제외하라는 지침은 물론 없다.
고조선의 범위를 알려주는 지표로 인식되는 탁자식 고인돌. 사진은 강화도에 있는 것으로 전체 높이는 2.6m이며, 덮개돌은 길이 6.5m, 너비 5.2m, 두께 1.2m다. |
이런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지 교육부에 물었다. 지난해 11월 국민신문고를 통해서였다.
필자의 질의는 일단 국사편찬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런데 국사편찬위는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교육부 교과서기획과로 질문하라고 답했다. 그렇게 두 달을 서로 미루다 교육부 교과서정책과에서 답변이 왔다.
“학계에서 정설로 인식되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편찬기관이 집필한 내용을, 국사편찬위의 감수를 거쳐 수록했는데, ‘고조선의 세력범위’라는 것은 유물 분포 범위 즉 ‘고조선 관련 문화 범위’로 해석되고, 학계에서는 고조선의 문화범위를 고고학적 연구성과(미송리식 토기, 비파형 동검, 탁자식 고인돌 출토범위)와 사료기록(준왕의 남천(南遷) 기사, 신라 6촌의 조선 유민관계 기사)을 바탕으로 추정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교과서연구재단이 운영하는 교과서민원바로처리센터에도 같은 질문을 했다. 질문이 출판사와 집필자로 전달되는 과정을 거쳐 “교과서에서는 가장 통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제시하되 학생들의 사고를 유연하게 하도록 기술하는데, 학계의 논의를 반영한 것”이라며 국사편찬위 편찬의 ‘한국사’ 3권을 참고했음을 밝혔다. 교육부는 “삼국시대 왕릉급에 버금가는 규모의 고조선 지배계층의 무덤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이유를 추가해 “한반도 전체를 고조선의 영역으로 주장하기도 어렵다”고 답변했다.
그럴듯하지만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몇 가지가 있다.
먼저 ‘학계의 통설’, ‘학계에서 논의된 것’이라고 했지만 재야학자들의 연구는 빠져 있다. 한반도 전체를 고조선의 세력범위로 보는 1980년대 윤내현의 연구, 1992년 출판된 윤내현·박성수·이현희 공저 ‘새로운 한국사’ 등은 무시했다. 그렇다면 교육부나 국사편찬위 등이 ‘통설’, ‘학계’라고 지칭한 것은 공통된 합의가 아니라 영향력이 있는 학자들의 이론을 말하는 것이 된다.
둘째, 유물 분포에 따라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정했다는 답변대로라면 지도에는 랴오닝 지역과 한반도 서북부에서만 나오는 유물을 표시해야 한다. 남한지역과 랴오허강 상류, 톈진 지역에서도 비파형 동검이나 탁자형 고인돌이 발견되었다고 표시해 놓고는 해당 지역을 고조선의 범위에서 제외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셋째, 교육부는 남한을 제외한 근거로 든 고조선 준왕의 남천 기사, 신라 6촌의 조선 유민관계 기사를 들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위지 동이전’ 등에는 “위만에게 패한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이 남한 지역으로 와서 한왕(韓王)이라 칭했다”는 요지의 기사가 있다. 준왕이 남쪽으로 왔을 때 ‘다른 세력’이 있었다면 충돌이 벌어지는 게 자연스럽지만 그런 내용은 없다. 기사대로라면 같은 고조선의 세력범위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고조선의 유민이 신라 6촌을 이루었다”고 하는 내용도 신라 지역이 고조선의 범위 안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런 기록을 남한 지역 제외 이유로 든 것은 모순이다. 오히려 남한 지역도 고조선의 세력범위에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자료다.
넷째, 현재의 남한 지역이 고조선의 범위가 아니라면 남한 지역에 있었던 ‘다른 세력’이 누구인지를 밝혀놓아야 한다.
고조선의 범위를 알려주는 지표로 인식되는 비파형 동검. 2010년 1월 전남 여수에서 당시로서는 최대 크기인 길이 43.4㎝짜리 동검이 발견됐다. |
남한 지역을 고조선의 세력범위에서 제외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식민사학 논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지금도 극복하지 못한 ‘한사군 한반도설’이 그것이다.
주류 학계에서는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설치했다’는 한사군이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지역에 있었다’고 하지만 1차 사료는 중국 허베이성 난하 부근에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한사군을 북한 지역에 가져다 놓고, 고조선의 세력범위라고 본 것이다. 남한 지역이 고조선의 세력범위였다면 남한 지역에도 한사군이 설치되었어야 하기 때문에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한사군이 설치된 북한 지역에 한정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학교(왼쪽)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고조선의 세력범위 지도. 탁자식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 출토 지역을 고조선의 범위로 표시하고 있다. 현재의 남한 지역에서도 비파형 동검이나 탁자식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고조선의 범위에서는 제외했다. |
이 지도가 중국 동북부를 고조선의 세력범위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남한 지역을 제외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내부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만주를 포함한 북한 지역을 장악했던 고조선과 고구려를 자기들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가 2005년 9월 9일 국회 ‘고구려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공청회에 공술인으로 참석하여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은 ‘고조선-고구려’가 아닌 ‘삼한-신라’를 이은 고려의 후예로서 임진강 지역 이남에 있었고, 북쪽에 있었던 고조선과 고구려는 중국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만들어놓은 국정교과서의 고조선의 세력범위 지도가 그 실마리를 제공했을 수 있다. 우리나라 학자들과 정부의 역사의식을 바로세우는 게 급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공청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고, 김정배 당시 고구려역사재단 이사장(현 국사편찬위원장)은 “왜 재야학자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했다. 필자가 “재야학자든 강단학자든 내 말의 틀린 점을 지적해 달라”고 했더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지도를 보는 학생들은 ‘우리는 고조선의 후예가 아니구나. 그런데 왜 고조선의 역사를 배우지?’ 하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중국의 동북공정 관련 주장에 대해 “우리 책에도 그렇게 되어 있으니 중국의 주장이 맞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중국 동북공정이 맞다는 것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 인정하는 자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역사 연구가 초래하는 결과가 이렇게 심각하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
책임은 지도를 그려서 교과서에 실은 정부와 주류 국사학계에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규정한 헌법 조문조차 역사적 영토를 반영하지 못하므로 개정해야 한다는 청원을 받고 있다. 국사편찬위의 ‘한국사’나 주류 학자들의 책을 보면 구석기, 신석기 유적 분포도 한반도 지역만 표시한 경우가 많다. 조선 말기까지 우리 영토 표시 지도 중 간도를 표기한 지도가 거의 없다. 우리 스스로 역사 영토를 한반도 안으로 제한하는 반도사관에 대한 비판이 높은 판국에, 남한까지 제외한 지도를 교과서에 실은 것을 크게 걱정할 수밖에 없다.
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이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제가 되는 주제별로 국사학자와 정책입안자들이 함께 모여 공개토론회를 열면 얼마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근거자료와 고고학 발굴성과를 분석하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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