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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 미래 위해 도전하는 돈키호테 되고싶어”

입력 : 2015-08-11 21:32:49 수정 : 2015-08-11 21: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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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뮤지컬 ‘아리랑’ 제작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도전과 모험. 뮤지컬·연극 제작사 신시컴퍼니의 박명성(52) 대표에게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대놓고 “햄릿이 아니라 돈키호테처럼 내지르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올여름 그는 또 한 번 ‘아리랑’이라는 야심찬 도전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제작비 50억원에 3년간 공들인 대형 창작 뮤지컬이다. 흥행 요인보다 위험 요소가 더 많은 작품이지만, 박 대표는 돈키호테처럼 이상을 따랐다. 그의 행보가 흥미로운 이유는 숱한 실패를 딛고 도전하는 데 있다. 그것도 수지타산을 따지면 접어야 할 도전을 ‘뚝심’으로 밀어붙인다. 불확실성에 떨며 안정을 희구하는 세태다 보니 그의 모험가 정신은 더 두드러진다. 최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만난 박 대표는 “남들이 엄두 내지 못할 일에 도전해온 게 프로듀서로서 내 존재 이유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 여러 번 실패해봐서 설령 또 실패해도 충격이 덜해요. 경험해 봤으니까요. 또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했을 때 성취감이 있잖아요. 남이 보면 ‘아리랑’은 무모하고 위험한 도전일 수 있어요. 하지만 ‘아리랑’ 개막 후 관객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큼 큰 성취감과 쾌감을 느끼죠.”

‘아리랑’은 티켓이 잘 팔려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힘든 작품이다.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든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태생부터 흥행 요인보다 위험 요소가 많았다. 우선 해외 뮤지컬의 격전지인 대극장에서 창작 작품이 어깨를 겨룰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매진이 보장된 스타 배우를 기용하지도 않았다. 주 관객층의 선호 장르도 아니었다. 지난달 기대와 우려 속에 개막한 ‘아리랑’은 다행히 한 달여 순항 중이다. 관객과 평단의 반응도 좋다. 박 대표는 “원작자인 조정래 선생이 개막 후 3일 연속 전화해 아주 상기된 목소리로 수고했다고 격려했다”며 “덕분에 한 시름을 놓았다”고 말했다.

“‘아리랑’은 우리 역사 이야기에 영상·조명 등 미래 공연 메커니즘을 융합시켰어요. 한국 창작 뮤지컬의 희망을 제시했다고 봐요. 후배 프로듀서들에게 우리 뮤지컬도 과감한 투자로 이 정도 성장했고 해외 선진 시스템 못지않게 제작 시스템이 발전했다는 꿈과 희망을 준 것 같아요.”

‘아리랑’의 안착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2007년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우’를 올렸다. 연극 ‘산불’이 원작이었다. 해외 명작에만 매달려서는 뮤지컬계에 미래가 없기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준비 기간 7년, 제작비 45억원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25억원 적자, 쓰디쓴 실패였다. ‘산불’은 그에게 ‘연극의 불’을 지른 작품이기에 더 뼈아팠다. 전라남도 해남 ‘촌놈’이던 그는 고교 시절 ‘산불’을 보고 배우의 꿈을 품었다.

“엄청난 수업료를 내고 누구도 할 수 없는 공부를 한 거죠. 내 ‘몸뚱아리’로 체험하고 고생하면서요. 이후 다른 창작 작품을 만들 때 엄청난 노하우가 됐어요.”

그의 실패의 역사는 ‘댄싱 섀도우’가 처음이 아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1982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극단 동인극장에 둥지를 틀었다. 배우들 양말을 빨고 라면을 끓이고 단역을 맡으며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연기로 빛 볼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연출로 방향을 틀었다. 역시 신통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시절 심정을 ‘배우로서도 실패했고, 연출가로서도 실패다. 그렇다고 연극판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연극을 떠나서 결코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고 표현했다. 공연 기획자로 변신한 그는 20여년간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공연계 대표 프로듀서로 자리 잡았다.

“성공과 실패는 백지장 한 장 차이예요. 실패했다고 주저앉으면 낙오자가 되는 거고, 일어서서 재도전하면 과거 실패가 큰 자산이 돼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또 실패할까봐 두렵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저수지 속에 들어가본 사람은 밑에 자갈이 있는지 고둥이 있는지 알아요. 안 들어가본 사람은 컴컴한 물이 무섭죠. 무슨 일을 하든 잘못되거나 틀릴 수 있다고 늘 생각해요. 하지만 굽잇길 없는 인생이 어딨어요. 힘들고 절망스러울 때 다 내동댕이치고 싶지만, 그 고비야말로 승리의 문턱에 다다랐다는 증거예요.”

그토록 고생스러운 공연을 왜 하느냐고 묻자 그는 “나 스스로가 행복하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프로듀서를 ‘최초의 꿈을 꾸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아리랑’ 이후에도 그의 꿈은 계속된다. ‘아리랑’은 앞으로 10년간 1000회를 올리는 게 목표다. 다음 창작 뮤지컬 소재로는 소설 ‘담징’과 이중섭 화가의 생애를 검토 중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은 다 들어왔기에 우리가 그 수준으로 만들지 않으면 창작 뮤지컬은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창작 작품은 여전히 위험이 크지만 그는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다보면 ‘아리랑’ ‘댄싱 섀도우’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단 저지르고 전략을 짜고 하나씩 추슬러야 해요. 다 계산하고 저지르려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해요. 해외 명작이든, 소극장 연극이든 흥망 여부는 아무도 몰라요. 제가 유난히 무모하거나 배포가 큰 게 아니라, 연극·뮤지컬 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할 수밖에 없어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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