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송영애의 영화이야기] '기적의 피아노' 익숙한 것에 대하여

관련이슈 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입력 : 2015-09-05 13:57:00 수정 : 2015-12-05 14:21:57

인쇄 메일 url 공유 - +

 



‘기적의 피아노’(감독 임성구, 2015)를 보았다. 시각 장애가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예은이와 가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방송 속 예은이의 모습이 일종의 무대 위 모습이라면, 이 영화 속 예은이의 모습은 무대 아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학생으로서, 음악가로서, 딸로서, 그리고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각 장애가 있는 것 치고, 혹은 나이가 어린 것 치고 피아노를 잘 친다.“ 는 식의 평가는 현실 속에서 예은이가 음악가로서의 삶을 걸어가는데 도움만 되는 것은 아니다. 예은이가 부딪히고 겪어내야 할 일들이 많다.

악보를 본 적이 없는, 볼 수도 없는 예은이는 오로지 이미 연주된 곡을 듣고 암기해 연주를 한다. 피아노 건반도 보면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88개 피아노 건반 중 정확한 건반을 정확한 박자에 치는 것도 쉽지가 않다. 

피아노 콩쿨 연습 과정에서 악보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에 맞게 정확히 연주하면서 연주자의 해석을 곁들여야하는 피아노 연주가 예은이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비슷하게 연주해내지만 콩쿨에서의 경쟁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예은이가 피아노 연주를 할 자격이나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꽤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어떤 ‘연주 기준’에는 부적합할지 모르지만, 예은이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피아노 연주로 표현하는 작곡가로서의 가능성 기준에는 충분히 적합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은이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행복함을 느끼고, 듣는 사람들에게도 그 느낌을 전달해준다. 예은이가 작곡한 음악은 영화 속 연주로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들을 수 있다. (또한 군 입대를 앞두고 재능기부로 내레이션 녹음에 참여한 박유천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귀 호강 영화’ 이기도 하다.)

극장 판 다큐멘터리 영화로서의 형식적 신선함이 크지는 않지만, 내용적 진정성 덕분에 우리 삶에 존재하는 여러 기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콩쿨 성적이 평가의 절대적 기준일까?” “악보를 보지 못하면 연주가 불가능할까?”라는 영화를 보며 드는 생각들이 “대학은  꼭 가야 할까?” “결혼은 어떻게 해아 할까?”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할까?” 등등 살면서 늘 만나게 되는 선택의 기준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진다. 

약 120년에 걸쳐 변화되어 온 영화의 역사 속에서 현재를 살며 평생 영화를 보아온 사람들에게도 “영화가 왜 이래!” “영화가 이래야지!” 식의 영화를 보고 평가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과 영화 모두에 자주 등장하는 자격 기준이나 선택 기준, 평가 기준 등 온갖 기준 등은 영원불변하진 않다. 기준은 늘 바뀌기 마련이고, 내 스스로도 어떤 기준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영화는 반드시 극적인 스토리를 지닌 극영화여야 한다거나, 다큐멘터리 영화는 뭔가 심각한 사회 문제를 파헤쳐서 원인과 대안을 제시해야한다거나 하는 식의 영화 선택 기준을 반드시 준수해야겠다는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를 추천하다. 누군가에게 장애가, 음악이, 일상이 어떻게 극복되고 즐겨지고 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지난 글에서 소개한 ‘마리이야기’(감독 장 피에르 아메리, 2015)처럼 수고가 좀 필요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이지만 개봉일 기준 전국 스크린 수는 70개였고, 상영회수도 109회였다. 스크린 1개당 하루 2회 미만으로 상영되고 있는 셈. 그만큼 관람을 위해서는 장소와 시간 맞춰야하는 노력이 좀 필요하다.

‘기적의 피아노’가 어떤 기준에 의해 많은 스크린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관객들의 선택을 많이 받았으면 한다. 다양한 영화의 상영이 점차 어려워지고 요즘, 다양한 영화를 선택하는 부지런한 관객밖에는 믿을 곳이 없다.   

서일대학교 영화방송예술과 외래교수 송영애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
  • 조이현 '청순 매력의 정석'
  • 에스파 지젤 '반가운 손인사'
  • VVS 지우 '해맑은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