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벽에 막히고 갈등 해결 떠안고… 언제 잘릴지 불안… 우울증 환자 5명중 1명이 50대
한 대기업 영업 부서의 부장인 이형근(52·가명)씨는 얼마 전 한 부하 직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우연히 그의 컴퓨터 모니터에 뜬 메시지를 보고 크게 놀랐다. 욕설처럼 느껴지는 단어 ‘개저씨’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로 돌아온 이씨는 즉각 온라인에서 개저씨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예상처럼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중년 남성에 대한 혐오의 뜻으로 쓰이는 단어였다.
그날 이씨는 퇴근 이후 침대에 누워 잠들 때까지 자신의 어떤 행동이 개저씨라 불릴 만한 것이었는지 곱씹었다. 직접 불러 해명을 들을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이후 이씨는 부서 내에서 말수가 줄었다. 이씨는 “예전에는 애써서 젊은 직원들에게 말도 걸고 회식도 자주 가지려 노력했다”면서 “그 말이 트라우마가 됐는지, 괜히 부서에서 눈치를 보게 되고 다른 이야기는 안 하려 한다”고 말했다.
50대가 외롭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50대는 직장 내 다수인 젊은 직원과 소통하려 하지만 자주 세대의 벽에 부딪혀 좌절한다. 최근 책 ‘중년이여 자신의 이름을 찾아라!’를 펴낸 김해원 작가는 “보통 50대 직장인은 조직 내에서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듯 보이지만, 정년을 앞둔 데다 의지할 동료가 적어 쉽게 소수자가 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직장뿐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다. 보통 10∼20대인 자녀 세대와 부모 세대인 50대는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경남 창원에 사는 주부 이모(54·여)씨는 최근 외동아들인 박모(25)씨가 점점 ‘남’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이후 얼굴 보는 날이 1년에 채 한 달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보름에 한 번 정도 하는 전화통화도 생활비, 월세 등 돈 얘기일 때가 대부분이다.
50대는 다른 세대보다 쉽게 갈등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직장, 가정 내에서 고립된 50대는 홀로 갈등 해결의 책임을 떠안는 경우가 많다. 경기 지역의 한 자동차 부품 납품업체에서 생산이사직을 맡고 있는 한모(54)씨는 두 달 전 사장으로부터 ‘제조원가 절감을 위한 생산합리화 방안’을 모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생산현장 인력을 줄이라는 뜻이었다. 얼마 전 관련 소문이 현장 직원들 사이에 돈 뒤 반장급 직원들이 거의 매일 사무실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씨는 “워낙 민감한 내용이라 어디 터놓고 이야기도 못하고 있다”며 “관련 보고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아 요즘은 밤잠까지 설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50대는 평생을 직장에서 헌신해 왔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와의 갈등 속에 언제 명예퇴직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압박감과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걱정을 안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50대의 처지는 수치로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와 BK21 갈등사회교육연구단이 2014년 성인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 결과, 50대가 전체 세대 중 사회갈등을 가장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는 사회갈등 수준에 대한 인식 점수가 10점 만점에 7.16점이었고, 이어서 40대(6.94점), 30대(6.83점), 60대(6.79점), 20대(6.63점) 순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50대는 조직 내 의사결정구조에서 상위를 점하고 있기에 이해충돌의 최전선에 서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다”며 “실제 갈등을 가장 많이 겪는 것과 함께 전반적으로 사회갈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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