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5자 회동’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운데)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옆에서 다소곳이 지켜보고 있다. 세 사람은 이날 7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은 회동 후 “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 성과와 경제정책을 비롯한 각종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진지한 대화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회동 후 기자들에게 “박 대통령이 경제를 한 번 살려보겠다고 법 몇 개 처리해달라는 데 34개월 동안 발목을 잡고 있다. 너무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5자 회동에 대해 “한마디로 왜 보자고 했는지 알 수 없는 회동이었다”고 혹평했다. 그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역사인식이 상식과 너무나 동떨어져서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것 같은 암담함을 느꼈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중단하고 경제살리기와 민생에 전념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국회 일정을 전면 중단한다든지 예산심사를 거부한다든지 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며 국회 보이콧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5자 회동을 갖고 국정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 박 대통령,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번 5자 회동은 지난 3월 3자 회동과 비교해볼 때 여러 면에서 대비됐다. 먼저 이날 회동은 오후 3시부터 4시48분까지 108분 동안 진행됐다. 지난 3월17일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100분 회동’보다 8분가량 길었다.
회동 참석자도 여야 대표에서 여야 원내대표까지 포함해 확대됐다. 3자 회동때는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이 김·문 대표와 1시간가량 조율을 거쳐 공동 발표문을 만들고 양당 대변인이 언론에 브리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박 대통령과의 회동이 끝나자 마자 여야 지도부는 추가회동 없이 곧바로 청와대를 떠났다. 청와대와 새정치연합이 별도의 발표문을 만들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이번 회동에선 양당 대변인이 배석하지 않아 양당 원내대표가 회동내용을 직접 받아적은 뒤 이를 언론에 전하는 형식이 됐다. 문 대표가 “야당이 듣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가 되길 바라고 5자 회동에 응했는데, 이렇게 기록도 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만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데 대해 박 대통령이 “한자 한자 따지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세밀하게 그렇게 적어야 하느냐.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난감해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자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휴대전화로 녹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으나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이 거절했다. 이 원내대표는 “현 수석이 기록하니 그것이라도 한 부 넘겨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박 대통령이 반대한데다 김 대표가 “그건 더더욱 안 된다”고 강한 거부감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문 대표, 이 원내대표가 각자 메모한 내용을 토대로 서울 시내 한호텔에서 대변인단과 함께 A4 용지 5장에 대화 내용을 복기해 언론에 브리핑했다. 문 대표는 최고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회동 결과를 설명했으며, 대표실을 찾은 주승용 최고위원에게는 직접 전달했다. 브리핑에 나선 이 원내대표는 “손이 아프도록 적었다. 얘기하랴 적으랴…”라고 ’받아쓰기’의 고충을 털어놨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도 “거의 토론 수준으로 진행됐다”는 이날 회동에서 발언과 필기를 번갈아 한 자신의 처지가 “(농구의)올코트 프레싱”이었다고 비유했다.
회동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달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원 원내대표는 회동 때 받아적은 메모지를 뒤적이느라 진땀을 뺐다. 열기가 미처 식지 않은 탓인지 원 원내대표는 김 대표의 발언을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잘못 전달했다가 정정하는 해프닝도 빚었다. 원 원내대표는 애초 박 대통령이 “예단해서 교과서를 친일이니 독재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으나, 나중에 “당 대표님 말씀으로 기억한다”며 이 발언이 김 대표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바로잡았다.
◆덕담 주고받으며 부드럽던 회동 초반
회동은 청와대 접견실에서 이날 오후 3시 정각에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1분 정도 먼저 회동 장소에 도착해 엷은 미소를 띤 채 기다리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방으로 들어오는 여야 지도부를 맞았다.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특별한 모두발언 없이 선 채로 4분여 환담하고 이어 곧바로 라운드테이블에 앉아 본 회동을 시작했다. 환담에서 박 대통령은 “두 대표님, 원내대표님들이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덕담을 건넨 뒤 “귓속말도 하고 반갑게 서로 인사도 나누시는데, 정말 사이가 좋으시냐”고 물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종걸 원내대표님 이름에 ‘종’ 자가 들어가지 않습니까. 제 이름에는 ‘유’ 자가 들어가고. 그래서 19대 국회 마지막 회기에 유종의 미를 거두자, 이런 구호를 만들자고까지 했다”며 가볍게 분위기를 띄었다. 박 대통령이 “서로 잘 통하시면 그만큼 나라 일도 잘 풀리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고 받자, 문 대표도 “국민께 함께하고, 웃는 모습 보이고, 뭔가 이렇게 합의에 이르고 하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또 박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을 거론하며 “3일 동안 사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참 듣기도 가슴 아프더라고요, 절실한 아픔 아니겠습니까”라고 물으면서 “정치권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같이 더욱 노력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고 문 대표는 “어머니가 북한 여동생을 만나는 상봉하는 자리에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있었다”고 전하며 “상봉이 좀더 정례화되고, 확대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대통령께서 유념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환담에는 이병기 비서실장과 현기환 정무수석, 새누리당 김학용 대표비서실장과 김영우 수석대변인, 새정치연합 박광온 대표비서실장과 유은혜 원내대변인이 배석했지만, 본 회동이 시작되자 이 실장과 현 수석 외에는 모두 나갔다.
앞서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대변인 배석 문제를 놓고 각을 세웠다. 청와대의 5자 회동 제안을 수용한 새정치연합은 대변인 배석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강한 불만을 터트렸다. 문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정말 쪼잔한 청와대”라고 쓴소리를 했다.
이우승 기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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