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쥬라기공원’ 시리즈에서 사실상 주연은 공룡 랩터다. 학명은 벨로키랍토르(Velociraptor). 날랜 도둑을 이른다. 영화에서 랩터는 똑똑하고 조용하며 빠르고 파괴적이다. 시종 사람을 사냥하며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랩터 무리가 주방으로 도망친 아이들을 쫓아 숨바꼭질을 벌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지난해 상영된 4편에서는 딴판으로 나온다. 공룡 조련사에게 길들여져 인간 도우미 역할을 한다.
세계 최강 스텔스 전투기인 미 F-22 랩터도 유능한 사냥꾼 이미지다. 은밀히 날아 목표를 정확히 타격해 하늘의 요새로 불린다. 2007년 모의훈련에서 랩터 한 대가 F-15, F-16 전투기 144대를 격추해 ‘공중전 지존’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시리아, 이라크에서는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240차례 이상 정밀공습작전을 수행했다고 한다.
랩터 4대가 어제 한반도에 긴급 출동했다. 오산공군기지 상공에서 저공비행하며 위용을 과시한 것이다. 매우 이례적인 4대 동시 출격은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랩터는 평양 상공으로 몰래 들어가 김정은 집무실이나 북한군 핵심 시설에 핵폭격을 가할 수 있다. 과거 랩터 출격 시 김정일은 한동안 공개활동을 자제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김정일 생일(광명성절)인 그제 김일성·김정일 부자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고위 간부들과는 따로 비공개 참배한 것도 랩터의 무력시위를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 랩터 2대는 주일미군 기지로 복귀했고 2대는 오산기지에 착륙해 당분간 잔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특별연설에서 “북한 정권을 반드시 변화시키겠다”며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시사했다. 한·미 양국은 내달 연합훈련에서 적의 지휘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도 연습한다. 김정은의 랩터 무섬증은 어느 때보다 클 것 같다.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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