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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공포와 불안감에 침식된 이재민들 '악전고투'

입력 : 2016-04-19 19:53:01 수정 : 2016-04-19 21: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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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무서워 자동차를 집 삼아 생활 / 현지 직장 다니던 한국 남성“낡은 집 불안해 피난소 생활” /단수됐어도 호텔엔 빈방 없어/ 어렵게 영업중인 목욕탕 찾아/ 밖에서 대기행렬 100m 넘어 지진 발생 5일째를 맞은 19일 일본 구마모토현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 중이다.

추가 지진의 공포와 불안감으로 주민들은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주민 대다수는 여진이 두려워 집 대신 공원이나 주차장 등지에서 자동차를 집 삼아 생활하고 있었다. 구마모토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한 한국인 남성은 이날 “사는 집이 낡아 강한 지진이 또 오면 무너질까 봐 무서워 못 들어가고 있다”며 “잠은 자동차에서 자고 낮에는 피난소에서 지낸다”고 말했다.

일본 구마모토현에 있는 후지사키하치만구 신사에서 19일 한 여성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재민들은 밤이 되면 비교적 안전한 구마모토 시청사 1층에 마련된 대피소로 찾아오고 날이 밝으면 집으로 돌아가 지진 잔해를 치우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식수는 구마모토현 구마모토 시청사 앞에 대기하고 있는 급수차를 통해 공급받고 있었다. 2대 중 한 대는 물병, 다른 한 대는 6L를 담을 수 있는 비상용 비닐 물주머니에 물을 채워줬다. 

구마모토시청 1층 피난소 모습
구마모토시청 앞 급수차에서 물을 받아가는 시민들
구마모토 시청 인근 하나바타 공원에 가보니 공중화장실은 변기가 막혀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호텔이나 식당 등도 물이 끊겨 영업을 하지 못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구마모토에서 영업하는 몇 안 되는 호텔 중 한 곳인 도큐인호텔의 한 직원은 “숙박을 문의하는 손님에게 물이 나오지 않아 화장실도 쓸 수 없는데, 그래도 이용하겠느냐고 먼저 물어본다”며 “그래도 거의 빈 방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구마모토시청 화장실에 붙은 안내문. 위생을 고려해 일단 화장실을 사용토록 했지만 물이 부족하므로 아껴 쓰라는 메시지
문닫은 호텔. 구마모토성 바로 옆 KKR 호텔. 안에 보이는 요리사는 호텔에 피난해 있는 인근 주민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모습.
씻지 못하는 것도 큰 불편이다. 전날 오후 트위터에 영업 중인 대중목욕탕이 있다는 정보가 있어 그쪽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구마모토 시청에서 4㎞쯤 떨어진 목욕탕까지 가는 데 무려 2시간이 걸렸다. 도로 곳곳이 지진으로 파손돼 일부 차로가 폐쇄된 곳이 많았고, 1개 차로만 열려 있는 구간도 많았기 때문이다. 

구마모토에 있는 수이순 온천목욕탕. 오후 10시쯤 목욕을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시민들. 이 가게는 지진으로 수도가 끊긴 세대가 많아 며칠째 씻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평소 800엔인 이용 요금을 500엔으로 할인해줬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목욕하기 위해 찾아온 주민들이 100m 넘게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탕 내에서는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가능한 빨리 씻고 나가주기 바란다”는 안내방송이 10분쯤 간격으로 계속 흘러나왔다. 목욕탕 주인은 평소 800엔(약 8000원)인 요금을 500엔으로 인하했다.

일본인들이 자주 찾는 신사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대다수 신사는 지진 피해로 석상 등이 무너졌지만 추가 지진 가능성 때문에 석상을 다시 세우지도 못하고 있었다.

비상용 비닐 물주머니
그래도 몇몇 주민들은 문 닫힌 신사를 찾아 슬픔과 불안을 달래는 모습이었다. 구마모토현에 있는 후지사키하치만구 신사에는 이날 한 여성이 찾아와 돈을 던져 넣고 손바닥을 마주 친 뒤 고개를 숙이며 뭔가를 간절히 기구했다. 더 이상 지진이 반복되지 않기를, 지진으로 파괴된 일상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기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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