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행낭(파우치)은 외교문서 수발에 쓰이는 커다란 가죽 자루다. 치외법권 대상으로 보안이 유지돼 다양하게 활용된다. 재외국민 투표용지도 담긴다. 2011년엔 외교부 직원들이 술·핸드백 등을 주고받다 감사원에 적발돼 주의를 받았다. 관세 특혜를 받는 외교행낭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탓이다. 러시아 대사관 직원은 5000원에 당첨된 로또복권을 현금으로 바꾸려고 외교행낭으로 다시 보내기도 했다.
북한 외교관들이 외교행낭을 악용해 대북 ‘벌크 캐시’(대량 현금) 운반책이나 마약·금괴 밀수꾼으로 활동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은 줄리언 어산지를 외교행낭에 숨겨 대사관 밖으로 빼돌리는 작전도 짠 것으로 드러났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김종필(JP) 전 총리에게 외교행낭을 통해 서신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적 외교통신 수단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반 총장은 지난 1월에도 외교행낭으로 JP에게 구순 축하편지를 보냈는데, 조용히 넘어갔다. ‘지금은 안 괜찮고 그때는 괜찮다’는 이유는 뭘까. 반 총장이 지난 5월 방한해 대권도전 의사를 노골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두 번째 서신에서 “내년 1월에 뵙겠다. 지금까지처럼 지도편달 부탁드린다”고 적었다고 한다. 충청권 맹주인 JP의 ‘정치적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 총장은 때 이른 대권행보 비판에 대해 지난 6월 기자회견에서 “임기를 수행하며 (다른 곳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 달여 만에 벌써 주의가 흐트러진 건가.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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