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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밥 한그릇 나누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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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18 21:17:34 수정 : 2017-02-03 17: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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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세상 혼밥이 편하다고?
함께 밥 먹는 건 삶의 가치 공유
영혼을 나눌 누군가가 없다면
얼마나 외롭고 불행한 일인가
인기리에 방영되던 드라마 ‘혼술남녀’가 종영했다. 몇 해 전 일본에서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식당이 유행이란 뉴스를 보았다. 참 이상한 풍경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나라도 ‘혼밥’ ‘혼술’이 유행이다. 혼밥을 위한 식당 리스트가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뜨고 있다.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까칠한 노량진학원 스타강사 ‘진정석’은 읊조린다. “나는 혼자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 하루 종일 떠드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혼자만이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라고. 혼밥, 혼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혼창’(혼자 노래 부르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혼행’(혼자 여행하기) ‘혼캠’(혼자 캠핑가기)까지.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혼자 놀기라는 ‘혼놀’ 문화에 대한 유행이 퍼져나가고 있다. 심지어 TV 예능프로 ‘나혼자 산다’는 2030세대에게 꽤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나홀로족이 방구석에서 어떻게 밥해 먹고,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카메라는 싱글족 라이프스타일의 구석구석에 디테일하게 들이댄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20~30대 성인 남녀 15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나홀로족은 응답자의 52.5%에 해당했다고 한다. 모 여행사에서는 나 홀로 여행수요가 해마다 급증해 여행상품을 개발하고 있고, 모 호텔리조트에서는 나 홀로 투숙객을 위한 1인 패키지를 출시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 원두커피 매출이 급등하고 있다. 나홀로족은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취업, 결혼, 인간관계 등을 포기하는 사태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1인 가구 전성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 소설가
‘나 혼자’를 선택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삐딱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서도 아니란다. 쓸데없는 잡담으로 정신이 산만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하고 다른 사람의 식성에 맞춰야 하는 피로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 좋다. 혼자 여행 가고 혼자 호텔에 투숙하고 혼자 캠핑 가고. 그런데 역시 4050세대인 나로서는 나홀로 문화가 어색하기만 하다. 누군가에게 간섭받지 않는 나 홀로만의 생활방식, 내면을 찾는 시간일 수 있고 혼자의 충만감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혼밥은 내게 어려운 문제다.

“식사하셨습니까.” 한국 사람들의 인사법은 독특하다. 세상 어느 나라에도 이런 인사법은 없다. “밥 먹었니.” 혹은 “요즘 밥은 먹고 다니니.” 상대의 안부를 묻는 인사는 곧잘 ‘밥’과 연결된다. 먹는 것이 중요한 시절을 살아온 탓도 있다. 이젠 공허한 인사말이 됐지만 이런 인사말도 있다. “언제 우리 밥 한번 먹자”. 한국 사람은 밥을 나눌 때 격이 없어지고 경계가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여 식구(食口)’라는 말이나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말에도 항상 밥이 들어간다. 친화력과 공감, 공동체의식의 기본에 밥이 놓여 있었다.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면 사람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대, 소통 과잉의 시대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소통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테크놀로지 시대, 자동화시대에 인간은 더욱 시간이 없고 바빠지기만 한 것은 아닌가. 함께 앉아 있는 연인과 가족도 기계와만 대화를 나눌 뿐 식사시간은 조용하기만 하다. 혼밥이 편하고 덜 외롭다고 한다. 밥을 나누는 것은 삶을 나누는 것이고 가치를 나누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을 지옥이라 했다. 타인의 시선은 내 삶을 함부로 규정하는 폭력이라 말했다. 그러나 상호 교감이야말로 행복의 첫 번째다. 맛난 음식을 먹을 때 맛난 음식을 함께 먹고 싶은 그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 자기만이 맛의 행복감에 취해 있는 사람은 진정 외로운 사람이다. 영혼의 온기는 서로의 살을 비비는 데서 온다. 붉디붉은 단풍이 지고 있는 아름다운 한철이다. 붉은 장관을 함께 볼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면 무슨 재민가. 하물며 ‘밥 한 그릇’이야.

김용희 평택대 교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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