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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갇혀 버린 문학도의 꿈… ‘자유로운 새’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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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16 15:20:35 수정 : 2017-09-16 15: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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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창 대한조류학회장 문학도였던 그의 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독일어를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혼탁한 세상은 그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는 정권의 3선 개헌 반대운동에 참여했고, ‘요주의 인물’로 지목돼 1969년 연금(軟禁)을 당했다. 그가 해금 통지서를 받은 것은 1980년 4월13일, 12년이 지난 후였다. 송순창(78) 대한조류학회장의 20대와 30대의 소묘다. 
송순창 대한조류학회장은 박정희 정권 때 불순분자로 낙인찍혀 12년간 연금 당했다. 이후 재야 조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살아온 그는 “남한과 북한의 새 이름을 통일시키는 것이 꿈”이라며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새처럼, 남북의 조류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포천=이재문기자

연금 당한 시절 송 회장의 마음을 달래준 것은 학부모에게 선물 받은 한 쌍의 금화조였다. 그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자유를 꿈꿨고, 새에 대한 연구로 시대의 아픔을 위로받았다. 송 회장은 해금된 해에 대한조류학회를 창립했고, 조류학자인 원병오 경희대 교수와 함께 새 연구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지난 40여 년 간의 새 연구를 집대성한 조류도감 ‘한반도의 새’를 펴냈다. 도감에는 한반도에 도래하거나 서식·번식하는 야생조류 540종의 생태정보가 담겼다.

지난 11일 송 회장을 경기 포천의 자택에서 만나 그의 새 연구와 삶의 궤적을 들어봤다. 

-정권을 규탄하다 연금까지 당했다.

“당시 월간 ‘사상계’의 장준하 선생과 인연이 닿아 사상계에 몇 차례 칼럼을 썼다. 주로 당시 정권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작은아버지도 일본에서 조총련 관련 활동을 했을 때인데, 칼럼까지 쓰면서 집안 전체가 당국의 감시대상이 됐다. 방첩대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견디다 못해 밀항을 시도한 적도 있었는데, 결국 잡혀 돌아왔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3선 개헌 반대운동에 뛰어들면서, 학교에서 쫓겨나고 12년간 연금을 당했다.”

-연금 당시 나이가 서른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금이 막연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아내가 교사로 일해 생계 걱정은 덜 수 있었지만, 연금된 상태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1∼2년은 비교적 잘 버텼지만, 이후에는 점점 지쳤다. 그럴수록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아내가 근무하던 학교가 서울 창동에 있었는데, 그 근처 땅을 빌려 212평짜리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그 안에서 10여 년간 새를 키우고 번식시키면서 연구를 진행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키운 새만 2500여 마리 정도 된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관상조류는 거의 길러본 셈이다.”

-12년간 단절된 삶을 살다가 해금됐다.

“해금을 1년 정도 앞두고 곧 해금될 것이라고 미리 알려줬다. 새를 본격적으로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리고 해금이 되자마자 대한조류학회를 만들었다. 또 원병오 교수를 찾아가서 새에 대한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그때부터 원 교수와 인연이 시작돼서 함께 새 연구를 진행했다. 국내 텃새들은 물론, 철새 이동지인 시베리아 툰드라, 오호츠크해, 몽골고원 등을 다니면서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우리나라 새 연구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

“그 당시 우리나라 새 연구는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금은 환경부가 새 분야를 관장하지만, 당시에는 산림청이 맡고 있었다. 한 번은 일본 야조회(野鳥會) 멤버들이 산림청을 찾았는데, 난리가 났다. 책꽂이에 있는 책을 감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살펴보니, 당시 책꽂이에 있던 책 중 일본 서적을 참고한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당시에야 저작권이 제대로 있지 않을 때라 법적인 문제는 크지 않겠지만, 우리나라 조류 학계의 위상이 떨어지는 문제였다.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 조류학계의 현실을 통감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10년 안에 제대로 된 조류도감을 만들어야겠구나. 그렇게 시작해서 2005년 ‘한반도 조류도감’을 펴냈다.”

-1989년에는 녹색당을 창당했다.

“새를 연구할수록 환경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환경운동도 벌였지만 정부가 들어주는 것은 일부에 불과했다. 그래서 녹색당을 창당했다. 의회에 가서 정식으로 환경문제에 대해 일을 해보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유럽 녹색당이 좌익계열 정당이라는 이유로 안기부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아야 했다. 당시 안기부가 사무실로 거의 매일같이 찾아왔다. 결국 3년을 버티다 파산했다. 이후 NGO 단체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활동 중인 녹색연합이다.”

-재야 학자로서 부담이 있을 것 같다.

“학계에서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 조류에 대해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조류에 대한 글을 쓰면 학계에서는 월권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책을 내면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2005년 ‘한반도 조류도감’을 낼 때만 해도 심리적 부담이 상당했다. 재야 학자라 틀린 내용이 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지만, 그들보다 10배 이상을 노력하면 되지 않나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재야 학자라는 사실이 스트레스이면서도, 동기부여가 됐다. 다행히 당시 성과를 인정받았고, ‘한반도 조류도감’에 이어 ‘한반도의 새’까지 내게 됐다.”

-일본식 표현을 한 새 이름을 바로잡았다.

“새 이름은 한번 잘못 붙이면 새의 특성이나 형태를 파악하는데 혼란이 생긴다. 또 한번 정해진 이름은 바꾸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의 새 이름 중에는 일본의 새 이름을 잘못 번역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논병아리’다. 논병아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마치 논에 사는 새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새는 논과 관련이 없다. 새의 겉모습이 화려하고 색이 짙어서 ‘짙을 농’(濃)자를 사용한 것인데, 이것이 ‘논’자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삼광조’(三光鳥)의 경우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번역만 했다. 이 새는 별빛, 달빛, 햇빛의 세가지 색을 띤다고 해서 삼광조라고 불린다. 수놈은 꼬리가 20㎝ 정도로 길다. 그래서 이 새는 ‘긴꼬리딱새’라는 우리말 이름으로 개명했다. 삼광조보다 긴꼬리딱새라는 우리말 이름이 오히려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다.”

-도감에서 남한은 물론 북한의 조류 생태정보도 담고 있다.

“2007년 12월 평양을 직접 방문해서 북한 지역의 조류 연구자료를 입수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가져온 도감은 종이 재질이 떨어지는 데다, 그림마저 흑백이었다. 도감을 통해 남한과 북한의 새를 비교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다. 하지만 새에 대한 연구의 깊이만큼은 북한이 남한보다 더 뛰어났다. 일부 새들은 남한보다 자세하게 연구가 돼 있다. 덕분에 조류도감에 북한 지역 새에 대한 정보도 실을 수 있었다. 북한에는 남한에 없는 새가 있는데, 도감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도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그림이다.

“540여 종의 야생조류를 세밀화로 그렸다. 그림은 동생(송순광)이 그렸다. 동생이 원래 인물화를 그리는데, 새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동생과 함께 ‘한반도의 새’에 들어가는 세밀화를 그리는데 5년이 걸렸다. 새 그림은 그저 사진만 보고 따라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를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 나온 조류도감은 대부분 사진 도감이다. 도감은 ‘그림 도’(圖)자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림으로 채워야 하는 책이다. 그런데도 그림 도감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 보니, 국내에는 제대로 된 조류도감이 별로 없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남한과 북한의 새 이름을 통일시키는 것이다. 지금 남한과 북한에는 같은 종류의 새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남북한이 이런 부분에서 활발한 교류를 해서 좀 더 나은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의 남북 관계가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안타깝다. 그래도 남북에는 같은 종류의 새가 많다는 점에 희망이 있다. 언젠가 남북한 학자들이 대화를 나누면 가능성이 있겠다 싶다. 또 그런 과정들이 남북한 화합의 물꼬를 트는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한반도의 새’는 유작이라는 생각으로 집필한 책이다. 사실 책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이 조급했다. 심근경색이 있어서 출판사 측에 책을 서둘러 내달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다행히 ‘한반도의 새’를 완성했지만, 생이 허락하는 동안은 저술을 계속할 생각이다. 지금은 내년을 목표로 새의 진화 과정을 다룬 책을 준비 중이다. 아마도 이게 진짜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

포천=권구성 기자 ks@segye.com

●송순창 대한조류학회장은

△1939년 서울 출생 △성동공고, 한국외대 독일어학과 △대한조류학회장 △녹색당 위원장 △월간 녹색의대안 편집인 △녹색연합 창립 △푸른정치연합 공동대표 △한국조류학회 이사 △한국토종학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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