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65일 중 유일하게 같은 숫자가 네번이나 겹치는 11월11일은 어떨까. 기념일이라고 정의하긴 어려워도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그 데이’ 외에도 한두개쯤 더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는 11일은 서로 다른 기념일(혹은 XX데이)들이 유독 많이 몰려있다. 1의 형태나 의미에 착안한 기념일이 많고, 최근까지도 새로운 기념일이 생겨나고 있다.
기념일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대중에 친숙한 것은 ‘빼빼로 데이’다. 1993년 영남 지역의 한 여자 중학교에서 빼빼로처럼 날씬해지라며 서로 빼빼로를 선물을 주고 받으며 시작됐다는 유래가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이 1996년 언론에 소개된 뒤 롯데제과는 이듬해부터 11월11일을 ‘빼빼로 데이’로 홍보하며 무료 증정행사 등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섰고, 이날의 대표명사가 됐다.
대항마격인 ‘가래떡 데이’도 어색하지 않다. 가래떡이 숫자 1의 모양처럼 길쭉길쭉하게 생겼다는 점에 착안한 것인데, 이는 2003년 안철수연구소(현 안랩)의 한 직원의 제안으로 사내 자체적으로 했던 이벤트다. 이 이벤트가 이슈화되며 2006년부터는 아예 농림부가 쌀 소비 촉진 차원에서 가래떡 데이를 공식 기념일로 지정해 매년 쌀 소비 촉진 행사 등을 열고 있다.
올해로 22회째를 맞는 농업인의 날도 11일이다. 농업인의 날로 정해진 것은 농민과 가장 밀접한 흙에서 기인한다. 농민은 흙에서 나서 흙을 벗삼아 함께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흙 토(土)자를 파자(破字)한 열 십(十)자와 한 일(一)자를 더해 11로 만든 기발하면서도 심오한 배경이 있다. 11월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제정한 원조는 강원도 원주시다. 원주시는 1964년 이날을 농업인의 날로 정한 뒤 올해 54회째 행사를 연다.
농업인의 날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권농일’(勸農日)은 일제강점시 당시 6월14일이었다가 해방 후 같은 달 15일을 ‘농민의 날’로 바꿔 불렀다. 이후에는 6월1일을 ‘권농의 날’로 정해 기념하기도 했다. 1973년에는 ‘어민의 날’, ‘목초의 날’과 통합해 6월 첫째 토요일로 변경됐고, 1996년 대통령령으로 11월11일이 농어업인의 날이 제정돼 첫 기념식이 열렸다. 이듬해에는 다시 농업인의 날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날 수많은 기념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은 올해 72주년을 맞는 ‘해군창설 기념일’이다. 초대 해군참모총장인 고(故) 손원일 제독이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海防兵團)을 창단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손 제독은 1945년 11월11일 11시에 모집한 장병 200명과 서울 관훈동 표훈전에서 결단식을 열었다. 해방병단의 창립 날짜 역시 선비 사(士)자를 파자해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은 신사도(紳士道) 정신에 따라 운용되어야 한다’는 손 제독의 신념이 묻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사단법인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11자이 쭉 뻗은 다리의 모양이라는 점에 착안해 지체장애인들이 신체적 장애를 이겨내고 직립하기를 바라면서 2001년 기념일로 지정해 매년 행사를 개최한다. 비슷한 이유로 11의 다리 모양에 착안한 ‘보행자의 날’도 11일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개발협회는 숫자 11이 쭉쭉 성장해 나가는 부동산 산업을 형상화한다며 지난해부터 이날을 ‘부동산 산업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또 코레일은 11이 기찻길 모양과 비슷하다는 것에 착안해 이날을 ‘레일 데이’로 정했다. 원로·중진 문화인들은 2004년 이날을 ‘우리가곡의 날’로 선포하고 다양한 공연 및 행사를 열고 있다.
대한안과학회는 지난해까지 11일을 ‘눈(目)의 날’로 지정해 기념했으나, 올해부터는 ‘세계 눈의 날’과 같은 10월 둘째 목요일로 변경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