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뜻한 11월 중순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양곤에서도 핵심 요지인 ‘인야호수’ 주변을 따라 아웅산 수치 여사와 군 고위층의 자택, 각국 대사관저 등이 그림 같은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가롭고 아름답지만 일반 시민은 접근이 쉽지 않았던 ‘그들만의 요새’이다. 이런 곳에 한국 브랜드를 선명하게 새긴 현대식 빌딩 두 동이 우뚝 서 눈길을 붙잡는다. 지난 9월 공식 개장한 ‘롯데호텔&리조트 양곤’이다. 미얀마 대표 유적인 ‘쉐다곤 파고다’ 황금탑보다 30㎝ 낮은 이 호텔(126.8m)은 양곤에서 가장 높은 현대식 건물이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를 식민 지배했던 영국조차도 손대지 못했을 만큼 절대적 추앙을 받는 유적인 터라, 이보다 높은 건물은 지을 수 없다. 우리나라 1970년대 경제 수준을 보이는 미얀마에 5성급 호텔이 쉐다곤 파고다만 한 높이로 지어졌으니 현지에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끌었을까. 포스코 관계자는 “호텔 개장식에 초대를 받았는지 여부가 상류층의 기준으로 알려졌었다”는 일화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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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포스코대우가 미얀마 경제 수도 격인 양곤시에 개장한 5성급 호텔인 ‘롯데호텔&리조트 양곤’ 전경. 포스코 제공 |
호텔은 연면적 10만4123㎡에 15층 규모 호텔 1동(343실)과 29층 규모 장기숙박 레지던스(315실)로 구성됐다. 현지에서 경험하기 힘든 컨벤션 시설과 레스토랑, 수영장 등을 갖췄다. 객실과 부대시설 모두 예약이 거의 찬다고 할 만큼 5성급 호텔을 경험하려는 고위층이나 부유층의 수요가 높다고 포스코는 설명했다.
총 3억1000만달러(약 3400억원)가 투입된 이 호텔은 포스코대우가 70년간 운영한 뒤 미얀마 정부에 기부채납할 예정인데, 아직은 외국인에게 토지 소유를 허락하지 않는 탓이다. 이 호텔은 포스코대우가 2012년 호텔 부지 사용권을 확보하면서 입찰과 개발 등 전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운영은 호텔·외식 전문 기업인 롯데에 20년간 위탁했다.
포스코그룹이 호텔 부지를 확보하고 건설해낸 과정은 32년간 심어온 신뢰와 영향력을 그대로 대변한다. 미얀마는 2006년 수도를 양곤에서 네피도로 옮기면서 정부 소유의 유휴 부지를 입찰에 부쳤다. 수십개 프로젝트가 동시에 추진됐는데 군 시설이 있던 이 부지는 그중에서도 핵심이었고, 40여개 국내외 기업이 각축을 벌인 끝에 ‘포스코대우-IGE’ 컨소시엄이 따냈다. IGE는 현지 굴지의 기업 중 한 곳으로, 이곳 회장은 미얀마 틴 초 현직 대통령의 군 선배이자 원로인 인연이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IGE가 국내 기업을 제쳐두고 한국 기업과 손을 잡은 것은 포스코가 그만한 역량과 신뢰를 심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저개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적절한 로비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배경 중에 하나다.
미얀마는 공기(工期)도 못 박았다. 투자 승인 후 42개월 이내에 준공하지 않으면 운영권을 몰수하겠다고 한 것이다. 설계에만 2~3년이 걸리는 호텔 사업을 고려할 때 불가능한 주문이었다. 하지만 시공을 맡은 포스코건설은 흡사 드라마 ‘쪽대본’처럼 건설 과정을 여러 단계로 끊은 뒤 설계가 완료되는 대로 착공해 공기를 맞췄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정부 입찰 프로젝트 가운데 유일한 성공 사례였다.
미국 대사관저는 호텔 입지의 가치를 단박에 설명해주는 포인트다. 풍광과 보안이 우수한 곳에 대사관저를 마련했던 미국은 졸지에 한국 호텔 발 아래에 놓인 신세가 된 것이다. 미국 등 여러 국가 외교관들이 이 호텔 레지던스로 거처를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최근 인야 호수 주변이 그린존으로 지정돼 더 이상 현대식 건물은 들어설 수도 없게 됐다”고 웃었다.


포스코그룹이 현지에 진출한 것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대우의 후신인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을 인수하면서 기반은 더욱 탄탄해졌다. 미얀마 철도부에 철도차량 100량을 공급한 게 시작이다. 국내 업체가 발굴한 최대 규모 해외 자원개발 사업인 가스전은 대표적인 성과다. 총 매장량 4조Tcf(입방피트, 원유 환산 시 약 7억배럴)로 국내 천연가스 소비량의 3년치에 이른다. 2014년부터 연 412만t씩 생산하는데, 지난해 5296억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포스코는 아연도금강판과 컬러강판을 생산하는 철강 공장 두 곳(연산 7만t)도 운영 중이다. 법인을 합쳐야 하지만 아직 회사법이 정비되지 않아 통합해 운영하는 형식이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8월 ‘양곤 상수도 개선사업’을 수주해 연말 착공을 앞두는 등 포스코그룹 각 계열사가 미얀마에서 추진하는 사업만 8개, 총 49억달러(약 5조3000억원) 규모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따라올 곳이 없고 미얀마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많은 규모다. 포스코그룹이 미얀마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그간 군부 독재와 미국의 경제제재에 묶여 ‘동남아 최후의 미개척지’에 머물렀던 미얀마가 신흥 유망 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란 판단에서다. 1960년대 쌀 수출 등에 힘입어 아시아의 부국으로 자리매김했던 미얀마는 반세기 동안 성장이 정체됐다가 지난해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역사에 시동을 걸고 있다.
원유준 포스코그룹 미얀마 대표법인장은 “미얀마는 농업 중심 경제 구조를 제조업 수출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미얀마 진출 32년째인 포스코그룹은 다양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진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곤=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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