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마고를 꺾은 스페인 마르께스 데 리스칼
세계적인 거장 프랭크 게리, 부띠끄 호텔 디자인
와이너리 오너 호세 루이스 무구이로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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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무희의 드레스를 형상화한 마르께스 데 리스 칼 호텔 마르께스 데 리스칼 제공 |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창문. 테라스로 나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중세풍의 마을. 세월이 묻어나는 고색창연한 와인 저장고를 개조한 연회장. 그리고 높은 천정이 특징인 우아한 인테리어의 레스토랑. 안락하면서도 편안한 휴식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공간이 있을까요. 바로 1858년 리오하(Rioja)에 설립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마르께스 데 리스칼(Marques de Riscal)입니다. 세계적인 갑부들과 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 부부, 기네스 펠트로 등 유명 헐리우드 배우들이 즐겨찾는 와이너리의 호텔은 2006년에 완공됐는데 스위트룸 12개를 포함해 객실이 43개인 럭셔리 부띠끄 호텔로 면적당 건설비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로도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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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게리 마르께스 데 리스칼 제공 |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답니다. 티타늄 강판으로 플라멩코 무희의 드레스가 물결치듯 흐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거대하고 독특한 조형물때문이죠. 파격적이며 드라마틱한 건축미로 유명한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 거장 프랭크 게리(Frank Gehri)의 작품이랍니다. 그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LA 디즈니 콘서트홀 등을 건립해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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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찾은 마르께스 데 리스칼 오너 호세 루이스 무구이로 |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어떻게 이런 거장과 손잡고 와이너리 건물을 탄생시켰을까요. 최근 한국을 찾은 와이너리 오너 호세 루이스 무기이로(Jose Luis Muguiro)를 만나 뒷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큰 키에 기품이 묻어나오는 손동작, 물 흐르듯 여유로운 말 쏨씨는 전형적인 셀럽의 모습입니다. “게리가 처음에는 와이너리를 지어달라는 요청을 거절했어요. 전에 본인이 진행한 프로젝트에 비해 너무 소규모라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았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해서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 경험을 꼭 해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답니다. 그는 3일동안 와이너리에서 지냈는데 마지막날 게리에게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봤죠. 그러자 그는 ‘왜 내 생일을 물어보느냐.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생일 물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며 버럭 화를 내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이 태어난 해에 만든 와인을 오픈하고 싶다구. 그러자 게리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머뭇거리더니 1929년생이라고 알려주더군요. 곧바로 와인 저장고로 달려가 1929 빈티지 와인을 꺼내왔죠. 코르크는 한번도 교체하지 않은 오리지널이었는데 와인의 상태가 매우 좋았어요. 한 잔 마시더니 게리가 그럽디다. ‘더 이상 와이너리 건축 못하겠다는 얘기는 못하겠군요. 생년 빈티지 와인을 오픈해준 분께 어떻게 노(No)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날부터 마르께스 데 리스칼의 새 역사가 시작 됐답니다. 얼마 뒤 뉴욕타임즈에 우리 둘이 찍은 사진과 함께 한 페이지로 기사가 나왔죠. 기사에서 게리는 그러더군요. ‘나는 더 이상 노라고 말할수 없었다. 생년 빈티지를 오픈해 줬기 때문이죠’라고. 하하하”. 결국 구하기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던 와인 1병이 세계 최고의 건축 거장 게리를 움직인 셈입니다. 그 와인은 바로 마르께스 데 리스칼 리제르바 1929 빈티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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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데 리스칼 리제르바 |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마르께스 데 리스칼이 보유한 와인 컬렉션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지하 셀러에 1862년 빈티지부터 현재까지 생산된 와인이 보관되고 있는 전세계 유일한 와이너리랍니다. 2011년 중국 베이징 와인 옥션에서는 마르께스 데 리스칼의 와인 1862년∼2005년 빈티지중 100개의 버티컬 셀렉션이 스페인 와인 사상 최고가 16만1000유로(약 2억원)에 낙찰되는 기록도 세웠답니다.
게리를 움직인 단 1병의 와인으로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세계적인 와이너리로 거듭납니다. 호텔 건립전에는 연간 2000명 정도이던 방문객이 연간 12만명이나 찾는 전세계적으로 관광지가 됐기 때문이죠.
“게리 덕분에 굉장히 유명해졌죠. 브래드 피트가 건축에 굉장히 관심 많은데 특히 게리를 영웅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졸리랑 특별한 밤을 보내기 위해 5년전에 호텔에서 머물기도 했답니다. 그들은 바론 데 시렐 리제르바( Baron de Chirel Reserva)를 많이 마셨어요. 기네스 펠트로와 한국의 박찬욱 감독도 방문했는데 그들의 조언도 귀담아 들었죠”.
호세 루이스 무기로는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단어로 전통과 혁신을 꼽습니다. 실제 마르께스 데 리스칼이 이름을 알린 것은 게리의 건축물 때문만은 아닙니다. 역사적인 사건은 1895년 보르도 만국박람회에서 벌어집니다. 그랑크뤼 1등급 샤토 마고와 샤토 라피트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죠.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 와인이 1등을 차지한 것으로 이때가 처음으로 세계 와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와인은 바로 게리한테 대접한 마르께스 데 리스칼 리제르바입니다. 템프라니요 90%, 그라시아노 7%, 까리냥 3%를 블렌딩한 와인으로 폭발적인 블랙체리, 블랙베리의 검은 과일향과 볶은 커피향, 스파이시한 검은 후추향이 치고 올라오며 밸런스가 뛰어나고 탄닌이 부드러운 매력을 지녔습니다. 이를 기념해 이 와인에는 지금도 프랑스 보르도 최고의 와인의 타이틀인 ‘르 디플롬 도뇌르 드 렉스포지씨옹 드 보르도(Le Diplome d'Honneur de l'Exposition de Bordeaux)’를 표시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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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품 방지를 위해 병을 금색 와이어로 감싼 마르께스 데 리스칼 리제르바 |
이 사건을 계기로 마르께스 데 리스칼 리제르바는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와인 가격이 오르자 빈병에 다른 와인을 채운 가짜 와인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모조품 방지를 위해 병을 금색 와이어로 감싸, 와이어를 뜯지 않으면 와인을 마실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첫 빈티지 생산량은연간 2000병이었는데 현재는 4만병이 생산됩니다.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스페인 와인 최고등급인 DOC를 가장 최초로 받은 리오하를 개척해 스페인 와인의 혁명을 이끈 대표 주자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에서는 최초로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양조 기술을 가져와 리오하 와인의 품질을 대폭 끌어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1858년 보르도 샤토 라니쌍에 있던 유명 와인메이커 장 피노(Jean Pineau)를 모셔와 프랑스 포도 품종으로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을 빚기 시작합니다. 양조 과정에서도 포도 줄기를 제거하고 보르도 오크통을 사용해 스페인 와인산업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장 피노는 스페인에 최초로 소개된 보르도 와인메이커죠. 리오하 지역 협회에서 보르도 양조방식을 배우기 위해 그를 초청했어요. 그런데 장 피노가 보르도 스타일의 양조방식을 소개했더니 리오하 협회 관계자들은 다들 고개를 저으며 그런 와인을 스페인에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는 군요. 이에 장 피노는 협회를 떠나게 됐는데 그때 그의 중요성 알고 손잡은 곳이 마르께스 데 리스칼이에요. 또 현대 양조학의 아버지 에밀 뻬뇨(Emile Peynaud), 작년에 작고한 샤토 마고의 수석 와인메이커이자 친구인 폴 퐁딸리에(Paul Pontallier) 등이 함께 와인 양조에 참여했답니다. 폴 퐁딸리에는 바로 프랑크 게리 헌정 와인을 만들어준 인물이죠. 100년이상 된 올드바인 템프라니요로만으로 만든 프랭크 게리 셀렉션 2012년 빈티지는 굉장히 유니크한 최상의 빈티지가 탄생했답니다”.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현재 리오하 지역에서만 1500ha 규모의 포도밭에서 스페인 대표 토착 품종인 템프라니오를 비롯한 그라시아노, 까리냥(마주엘로), 까베르네 소비뇽 등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에밀 뻬노(Emile Peynaud)와 함께 1972년 루에다(Rueda)에서 스페인 토착 품종 베르데호(Verdejo)로 최고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1974년에는 최초의 루에다 소비뇽 블랑 와인도 선보였답니다.
“베르데호는 키가 작고 수확하기 힘들어 당시 루에다에서는 이를 잘라내고 다른 품종을 심던 상황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베르데호의 잠재력을 일찍 파악해 품종을 재개발했답니다. 결국 1972년 화이트 생산이후 루에다는 스페인에서 유명한 화이트 생산지 됐고 많은 와이너리들이 루에다에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베르데호는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품종이에요. 화이트 와인, 드라이한 까바, 주정 강화 와인 셰리도 양조가 가능하답니다”.
그는 베르데호를 생산하면서 호주 와인의 거장 페탈루마 와인메이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베르데호는 원래 아로마틱 하지않고 중성적인 품종이었다는 군요. 원래 껍질과 함께 담가놓는 침용을 거치지 않았는데 침용을 거치면서 아로마가 풍부해졌다고 하네요. 마르께스 데 리스칼은 이처럼 세계적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며 정교하고 엘레강스한 와인을 만드는데 주력하는 것이 양조 철학이라고 합니다.
“스페인뿐아니라 세계적으로 성공한 화이트 와인의 본보기라고 자부해요. 정교함과 우아함을 갖췄을뿐아니라 음식과의 매칭도 뛰어나기 때문이죠. 가벼운 해산물과 아시안 음식은 물론 심지어 고기랑도 잘 어울립니다. 특히 가격대비 퍼포먼스가 잘 나타나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이 와인은 이런점이 잘 들어나죠. 친구인 폴 퐁탈리에는 이렇게 말했어요. ‘리스칼은 음식과 먹다보면 취할때까지 먹게되는 좋은 와인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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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데 리스칼 루에다 베르데호 |
실제 마르께스 데 리스칼 베르데호 와인을 테이스팅 해보니 그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먼저 코에서 상큼한 풀 냄새가 다가옵니다. 침샘을 자극할 정도로 산도가 상당히 좋고 과일향이 잘 들어나 음식과 매칭이 잘 됩니다. 특히 젖은 돌의 미네랄 풍미가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또 하나. 오크 숙성했는데도 오크 풍미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오크를 잘 다스렸습니다. 끝에는 살짝 후추향도 올라오는군요. 마르께스 데 리스칼 와인은 하이트진로에서 수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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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데 리스칼 핀카 몬티코 루에다 |
마르께스 데 리스칼 핀카 몬티코 루에다(Fina Montico Rueda)는 루에다 지역의 ‘몬티코 에스테이트’에서 자란 평균 수령 40년 이상의 포도나무에서 손수확한 최상급의 베르데호 100%로 만듭니다. 4개월동안 죽은 효모와 함께 두는 쉬르리(Surlee) 숙성을 진행하고 이후 6000ℓ 대형 프랑스 오크통에서 숙성해 깊고 풍부한 아로마와 희미한 오크 풍미가 우아하게 다가옵니다. 산도는 중간정도이고 둥근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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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데 리스칼 바론 데 시렐 베르데호 |
마르께스 데 리스칼 바론 데 시렐 베르데호(Baron de Chirel Verdejo)는 연간 2000병만 생산하는 프리미엄 베르데호입니다. 사타마리아 미에바에서 발견된 필록세라의 영향을 받지않은 올드바인으로 빚습니다. 생산 능력을 몇송이에만 집약시켜 과실 풍미가 짙은 포도가 생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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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데 리스칼 프랭크 게리 셀렉션 |
게리에게 헌정하는 와인 프랭크 게리 셀렉션(Frank Gehri Selection) 2012는 올드바인 템프라니오 100% 와인입니다. 코가 뻥뚫릴 정도로 파워풀한 향신료가 치고 올라옵니다. 템프라니요는 딸기, 체리 등의 붉은 과일향이 특징이고 탄닌과 산도 등이 완벽한 미디엄으로 한국 배우로 따지면 정우성 같은 캐릭터입니다. 임팩트나 카리스마가 떨어져 템프라니요만으로 매력있는 와인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가르나차와 임팩트가 있는 까리냥, 그라시아노 등을 섞어서 오크 숙성을 합니다. 하지만 프랭크 게리 셀렉션은 올드바인으로 만들었기에 깊고 풍부한데다 산도도 뛰어나며 낙엽, 시가박스, 흙냄새 같은 3차향이 많이 느껴집니다. 한마디로 괴물같은 와인으로 거장 프랭크 게리를 잘 표현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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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데 리스칼 그랑 리제르바 |
마르께스 데 리스칼 그랑 리제르바 2007은 템프라니요 90%, 그라시아노 8%, 마주엘로 2%를 블렌딩하는데 싱글빈야드 80년 이상 수령의 포도나무로 만듭니다. 프랑스 오크에서 2년 6개월동안 숙성하며 최소 3년의 병 숙성을 거칩니다. 가죽, 젖은 흙, 낙엽, 동물향과 감초 등 달콤한 향신료가 압도적으로 느껴지며 산도도 잘 살아있습니다. 특별히 좋은해에만 한정 수량합니다. 때문에 와인병에 총생산량중 몇번째 와인인지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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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데 리스칼 바론 데 시렐 리제르바 |
마르께스 데 리스칼 바론 데 시렐 리제르바(Baron de Chire Reserva) 2013은 템프라니오 70%, 카베르네 소비뇽 30%를 블렌딩했습니다. 80~110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만 선별하며 빈티지가 뛰어난 해에만 한정 생산합니다. 1986년에 첫 생산했는데 카베르네 소비뇽을 블렌딩해 리오하의 새로운 혁신적인 와인이며 프랭크 게리 셀렉션 다음으로 고급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연간 3000병 정도 소량 생산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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