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패러다임을 바꾸자] 한 지붕 아래 이웃들 … “소통하고 나누며 사는 재미 느끼죠”

집을 공유하는 3인의 스토리

“이곳에 들어와 살기 전과 후 삶의 질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대표적 대안 주거 모델인 공유주택에서의 생활 만족도가 높다는 입주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어떤 집에서 사느냐에 따라 ‘사는 맛’의 차원이 다름을 알게 됐다는 거다.

마을기업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과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하우징쿱), 셰어하우스 전문 ‘우주’(WOOZOO)의 공유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소행주와 하우징쿱, 우주는 국내의 척박한 공유주택 토양을 일궈 온 곳들이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 자리한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 3호 입주자들이 공유 공간에 모여 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소행주 제공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누리다

“처음에는 기획부동산 사기로 의심했었어요. 하하하.”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 자락의 ‘소행주 1호’ 주택 502호에서 만난 윤상석(41)씨는 약 8년 전 아내가 소행주 얘기를 꺼냈을 때 귀를 의심했다며 웃었다. 인근 연남동 골목길 빌라에서 전세로 살 당시 하루종일 어린 딸아이를 돌보며 외로움과 육아스트레스 등에 시달리던 아내는 느닷없이 “새로 짓는 주택으로 옮기자”고 했다. 중개업소도 안 끼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집을 짓고 산다니…. 윤씨는 이해가 안 됐다. 더욱이 자금사정도 넉넉하지 않은데 형편껏 원하는 크기와 스타일의 내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윤상석씨

그는 하지만 곧 공유주택에 관심을 가졌다. 아내의 채근에다 과거 밤길에 같은 빌라 사람을 강도로 오인했던 경험 등 이웃끼리 전혀 모른 채 사는 삶의 불안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그는 “입주예정자 첫 모임 때까진 참 낯설었지만 집이 완공되기까지 소행주의 교육프로그램과 건축 과정에 참여하면서 서로 친해졌다”며 “친구나 직장 동료 등 지인들 외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맛이 새로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 2011년 상반기 아담한(전용 36.4㎡·11평) 집에 입주했다. 9세대 중 가장 작은 크기로 세 식구가 살기엔 좁아 보일 수도 있지만 한 번도 그리 생각해 본 적이 없단다. 각 세대가 자리한 3∼6층 외에 2층과 7층의 공용공간 덕분이다. 공동 주방과 오디오·영상시설을 갖춘 2층 공간(약 39.7㎡·12평)에서는 입주자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고 수다를 떠는 등 편하게 어울린다.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는 공부방과 비누를 만드는 공방도 있는 2층은 지역 주민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셰어하우스 ‘우주(WOOZOO)’ 28호점 입주자들이 지난해 6월 옥상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모습. 우주 제공

윤씨는 “10명이 넘는 사람을 집에 초대해도 음식을 해먹고 떠들 수 있는 2층을 이용하면 되니까 불편한 게 없다”며 “캠핑 용품과 여행가방 등 공간을 많이 차지하나 자주 안 쓰는 물품도 7층 창고에 두고 함께 사용하니 집이 답답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에 살던 데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싹 사라질 만큼 가족 같은 이웃이 주는 안정감과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부가 급한 일이 생겨도 편하게 딸아이를 맡길 수 있고, 층간소음이나 주차 문제 등으로 마음 졸이거나 얼굴 붉힐 일이 전혀 없다. 딸도 4살 때부터 함께 자란 또래와 언니, 오빠들 덕에 덜 외롭게 컸다. 1년에 한두 차례씩 온 가족이나 엄마, 아빠들끼리 국내외로 떠나는 여행도 즐겁다.

사생활 침해 우려는 없을까. 윤씨는 “서로 잘 아는 집안사정에 맞춰 배려하며 사니까 오히려 편하고 사생활이 더 보장된다”며 고개를 저었다.입주자들은 속박감이 주거 공동체의 색깔과 맞지 않는다며 별도의 규칙도 정하지 않았다. 대신 6개월마다 돌아가며 대표를 맡고 보통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열어 공동체와 관련한 안건을 논의, 처리한다.

◆꿈에 그리던 집을 만나다

새해가 코앞이던 지난달 29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4층짜리 주택 2개동 ‘여백’ 주변은 공기가 상쾌했다. 서울 은평구와 인접한 곳인데 딴 세상 같았다. 고개를 낮추면 졸졸거리는 시냇가, 고개를 들면 풍광이 수려한 북한산이 눈에 들어왔다. 2년 전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여백으로 거처를 옮긴 민병권(65) ‘주택협동조합 여백’ 이사장에게 이곳은 “평소 꿈에 그리던 집”이었다. 옆집과 위아랫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삭막한 아파트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은퇴 후 2015년 초쯤 지인을 통해 하우징쿱의 다섯 번째 공유주택인 여백 얘기를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입주 신청을 했다. 민 이사장은 “나이 들면 외롭지 않도록 이웃과 돕고 재미나게 지내는 삶을 꿈꿨는데 여백이 그런 집이었다”며 “다양한 세대가 어울려 사는 콘셉트도 마음에 들었다”고 회고했다.

민병권씨

‘파란·하얀여백’동에 5가구씩 모두 10가구가 사는 여백은 자녀를 둔 30대 부부 가정부터 60대 부부, 독신자 등이 함께 사는 ‘세대혼합형’ 공유주택이다. 그해 4월 하우징쿱이 마련한 자리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이듬해 8월 여백 완공 후 입주 전까지 주말마다 모여 교제하고 건축 방향 등을 논의하는 과정을 거치며 사이가 돈독해졌다. 각자 원하는 집안 구조를 반영한 세대별 건축비는 인근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주변 아파트 전세가 정도라고. 하우징쿱이 일반 건설업체와 달리 개발이익을 챙겨가지 않아서 가능했다. 양질의 건축자재로 꼼꼼하게 시공돼 난방비 등 관리비도 아파트의 절반 수준이다.

입주민들이 서로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맛있는 게 생기면 나눠 먹고, 요리 중에 갑자기 식재료가 떨어지거나 혼자서 아파 힘들면 바로 이웃집에 ‘SOS’를 치는 것도 자연스럽다. 민 이사장은 “자녀들 출가시키고 적적했는데 손주 같은 아이들도 있고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웃었다.

지역사회 활동도 적극적이다. 북한산 등산로 입구 쪽이라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지저분했던 마을은 여백 입주자들이 꾸준히 정화작업을 하고 기존 주민들과도 잘 어울려 활기를 띠었다. 이효천 전 통장은 “여백 식구들이 솔선수범해 청소를 하고 이사온 다른 집들과 다르게 기존 주민들과 융화를 잘해 동네가 깨끗해지고 한층 밝아졌다”고 말했다.

◆주거비를 아끼고 안정감도 생기다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즐겨 적응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어요. ‘사회에 소속돼 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직장인 홍종표(27)씨는 지난 17일 기자와 만나 주거비용 좀 아끼려고 들어간 셰어하우스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그는 직장을 구한 지난해 6월 서울로 왔다. 당장 직장 근처인 종로구 혜화동 쪽 원룸들을 알아봤는데 너무 비쌌다. 방이 넓지도 않은데 수도·전기요금 등을 제외한 월세가 60만∼80만원에 달했다. 물가도 원주보다 전반적으로 비싸서 돈을 벌러 온 건지 쓰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홍씨는 “오죽했으면 부모님이 ‘그냥 원주로 돌아와라’고 했겠느냐”며 “별수 없이 집을 구하는 커뮤니티를 통해 우주 셰어하우스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과묵하고 내성적인 그가 순전히 지갑사정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과 살아야 하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1인실 2개와 2인실 1개에 거실과 주방, 욕실 등을 함께 이용하는 집에서 홍씨는 모든 비용을 합쳐 월 50만원인 2인실을 택했다. 룸메이트 A씨는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동갑내기였고, 1인실의 B와 C씨는 번듯한 직장을 버리고 베트남에서의 창업을, 영업직이 맞지 않아 이직을 각각 준비하던 30대 중반의 형들이었다.

홍종표씨

입주 초반 겉돌았던 홍씨의 마음을 열리게 한 것은 동거인들이 꿈을 위해 함께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영어와 일본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B씨가 A씨의 취업에 도움이 되도록 매일 토익과 영어 말하기를 가르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응원해 주고 정을 나누는 것에 경계심을 풀었다”며 “나도 스터디모임에 합류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터디 도중 각자의 삶과 고민, 미래 청사진 등을 교환하면서 거실은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럿이 TV와 영화를 보고 음식을 먹거나 술 한 잔 하며 고민을 나누고 격려하는 분위기도 좋았다. 홍씨는 “신입사원인 데다 타지여서 항상 긴장하고 외로울 때가 많았는데 귀가하면 확 풀렸다”며 “사회 경험이 많은 형들의 조언과 치열하게 사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힘들었던 회사 생활도 잘 극복했다”고 했다.

특별기획취재팀=이강은·최형창·김라윤 기자[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