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해롱이’ 유한양을 연기한 이규형 배우는 해롱이가 출소 후에 다시 마약을 하는 장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당시 그 장면은 대본에 짧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해롱이가 차에 타 있다. 주사기를 본다. 브로커가 해롱이에게 약을 준다. 해롱이가 ‘개새끼야’라고 말한다. 차에서 내리려 하지만 곧 ‘씨발’이라고 말하며 약을 투입한다.’
이게 대본 상 적혀있던 지문이었다. 하지만 신원호 PD는 긴 호흡으로 연기 하기를 바랐고, 이에 이규형은 대본을 참고하고 창작해낸다. 본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브로커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합을 맞추기 위해서다. 이규형 본인은 해롱이가 고민하는 장면을 많이 넣고자 했다.


이규형은 최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마약 때문에 항상 ‘해롱해롱’해서 별명이 ‘해롱이’인 유한양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해롱이’는 그동안 방송 등에서 다뤄본 적이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다. 잘나가는 요식업 사장의 자녀이면서 마약중독자에 동성애자다. 거부감이 들만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해롱이를 사랑했다. 깐죽거리고 엉뚱하고 사고뭉치이지만 그가 없는 2상6방은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다.
“신원호 감독님이 오디션 때부터 유한양이 귀여워 보였으면 하셨어요. 그렇지 않으면 비호감 캐릭터가 될 소지가 컸거든요. 중저음으로 하면 섬뜩할 수 있어요. 그래서 목소리 톤은 높고 말투는 어린아이처럼 했어요. 행동은 고양이를 참고했어요. 고양이를 3마리 키웠는데, 그게 많은 도움이 됐죠.”
이규형은 해롱이를 하얀색 도화지 같다고 했다.
“해롱이는 여자를 싫어해서, 여자에 흥미가 없어서 동성애자가 된 건 아니에요. 외로웠어요. 그런 상황에서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남자 사람 친구뿐이에요. 그렇게 각인된 상태에서 자랐죠. 새끼 오리가 처음에 눈을 뜨고 본 것이 ‘엄마오리’로 각인된 것처럼 남자 사람 친구를 평생 따라다니는 거죠.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해주는 사람에게 빠져들어요. 그래서 2상6방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고요.”


“어떻게 연기를 하면 거부감이 적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이성애자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모두에게요. ‘해롱이’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들 중 한쪽에게, 또는 양쪽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드라마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요. 그래서 너무 동성애자스럽지 않게, 그러는 동시에 어느 정도 동성애자스럽게 연기하려고 조심했어요. 영화였으면 조금 더 과감하게 시도해볼 수 있었지만 평일 야간 방송이잖아요. 모두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죠.”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일까. 이규형이 뽑은 명장면은 드라마에서 연인 송지원과 함께 한 장면이다.


이규형이 시청자들에게 눈을 찍기 시작한 것은 바로 전작인 tvN ‘비밀의 숲’에서 서부지검 사건과 과장 윤세원 역을 맡으면서부터다. 윤세원은 6살 아들을 잃은 아버지이자 복수를 위해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지적이고 냉철하며, 그리고 본심을 숨길 정도로 철저한 인물이다.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해롱이’와는 정반대다.
“극과 극을 연기했는데, 부담보다는 재미있었어요. 다음 작품에는 방송 드라마나 영화 위주로 선택하려고 해요. 기존에 했던 이미지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평범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양아치가 될 수도 있어요. 로맨틱코미디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고요. 지금은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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