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K스포츠재단에 제공한 70억원을 뇌물로 인정하고, 신동빈 회장을 법정구속한 것을 놓고 재벌기업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는 시각과 재판부의 판단이 너무 자의적이라는 의견 등 양형 기준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최씨 재판부는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와 달리 '안종범 수첩'에 대해 정황증거로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했습니다. 또 재판부는 최씨 딸 정유라씨가 탄 말 3마리의 소유권이 사실상 최씨에게 있었다면서 73억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판시했습니다. 앞서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말(馬)은 뇌물이 아니라면서 최씨가 삼성에서 받은 뇌물액을 36억원만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롯데의 K스포츠재단 70억원 추가 지원에 대해선 직권남용, 강요죄와 제3자 뇌물죄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 측이 먼저 요구하긴 했지만, 신 회장도 면세점 특허권 재취득을 위해 돈을 건넸다는 판단입니다.
이에 반해 삼성은 박 전 대통령이 현안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지시한 정황이 부족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삼성이 합병 후 처분 주식 수를 줄이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촉해 로비하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지시로 처분 주식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사실도 확인됐으나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1심 재판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14개월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주요 쟁점에 대해 재판부마다 각기 다르게 판단해 사법부의 신뢰에 금이 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재판부마다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림에 따라 이제 세인들의 시선은 대법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신동빈(63) 롯데그룹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인 최순실씨가 사실상 지배한 K스포츠재단 측에 제공했던 사업비 70억원이 뇌물이라는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가 롯데 측에 K스포츠재단 지원을 강요했고, 신 회장 측에서는 롯데의 면세점 특허 재취득 등 부정한 청탁과 함께 재단을 지원했다는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건넨 후원금 16억여원을 놓고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과 대조를 이루고 있어 갑론을박의 이어지고 있다.
우선 롯데의 70억원 지원과 삼성의 영재센터 후원금은 공소 논리가 비슷하다. 기업 총수가 사업 편의를 봐줬으면 좋겠다는 묵시적, 명시적 청탁을 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최씨가 깊이 관여한 기관·단체에 거액을 지원한 사건이다.
검찰과 특검은 이 사안 모두 제3자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박 전 대통령이나 최씨에게 직접 금품이 건네진 게 아닌 제3자에 해당하는 법인에 돈이 흘러갔지만 부정한 청탁 관계에서 빚어진 금품 거래라는 게 공소 논리였다.
핵심 쟁점은 실제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에서는 삼성이 최씨 측에 금품을 지원할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는 판단이 나왔다. 삼성이 부정한 청탁을 한 동기라고 특검이 봤던 '경영권 승계'라는 경영 현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항소심 판단이었다. 이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묵시적 청탁은 있었다는 이 부회장의 1심 판결 내용을 뒤집는 것이기도 했다.
이에 반해 신 회장과 최씨의 1심 판결에서는 부정한 청탁을 할 경영 현안이 존재했다는 판단이 나왔다. 호텔롯데를 통한 지주사 전환을 그룹 역점 현안으로 두고 있던 롯데는 면세점 사업 특허를 다시 얻어야 했고, 이를 신 회장이 안종범 전 수석과 논의했으며 안 전 수석의 보고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이를 롯데의 현안으로 인식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롯데 측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참담하다"면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결과에 대해선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삼성 2심 재판부 "말(馬), 후원금 16억여원 모두 뇌물 아니다"
최씨 재판부는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한 사실'을 인정해 석방된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와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이 부회장도 신 회장과 똑같은 징역 2년6월이었지만 집행유예를 받았다. 징역 3년 이하의 형은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이는 최씨 재판부가 대가성·공무원 직무와의 연관성 등 롯데의 지원금 70억원이 가진 성격을 주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재판부가 대가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언급한 '후원금 반환 경위' 의혹도 주목할 점이다. K스포츠재단은 검찰이 롯데 본사를 압수수색하기 직전인 2016년 6월9일부터 13일까지 롯데에 70억원을 돌려줬다. 이를 두고 롯데의 지원금 70억원의 성격은 '뇌물'이라는 의심이 짙었다.
실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특검 조사에서 "법무부에서 받은 대기업 수사정보는 박 전 대통령에게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돌려주라고 전달한 안 전 수석도 "돈을 반환하라는 건 박 전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밝혔다.
결국 우 전 수석은 롯데 압수수색 정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박 전 대통령은 안 전 수석을 시켜 돈을 돌려주라고 했으며, K스포츠재단은 이를 듣고 롯데에 돈을 반환한 셈이다. 70억원이 뇌물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하겠냐는 게 검찰의 시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의원들 "삼성에 대해선 사실상 면죄부 판결"
앞서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은 이번 판결 자체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 부회장의 판단 부분은 사실상 '면죄부 판결'이라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뇌물을 받는 수단으로 재단을 만든 것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낸 것에 대해선 국회에서 입법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에서 신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롯데와 삼성의 양형 불균형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도 판결 선고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법원은 삼성을 치외법권으로 삼을 생각인가'라는 글을 통해 판결을 비판했다.
민 의원은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오갔는데 삼성 승계 작업에 명시적,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부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선의로' 삼성의 승계 작업을 돕고 삼성도 '선의로' 수백억원을 바쳤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도 최근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판결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유 공동대표는 "사법부의 판단은 당연히 존중한다"면서도 "많은 국민들께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롯데 신동빈 회장이 왜 다르냐는데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3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서 재판에서 분명히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할 것"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 석방과 관련해 삼성 측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이 부회장은 서울구치소를 나오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짧은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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