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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울자 온국민이 따라 울었다…이상화의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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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19 06:00:00 수정 : 2018-02-19 0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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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상화 선수가 슬퍼하고 있다.
그녀가 울었다. 그러자 이를 직접 지켜보던 관중도, TV를 통해 지켜보던 전 국민들도 함께 울었다. 그만큼 그 눈물은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찡하게 만들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이래서 ‘눈물은 전염성이 있다’는 말이 있나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3연패를 노리던 ‘빙속 여제’ 이상화의 ‘위대한 도전’은 결론적으론 실패였다. 그러나 어느 누가 감히 누가 실패라고 규정지을 수 있으랴.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10대 소녀는 어느덧 30대가 되어 조국에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올림픽 도전을 끝을 냈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웠으며, 찬란했다.

이상화는 18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단판 레이스에서 37초33의 기록으로 36초94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고다이라 나오(32·일본)에 0.39초 뒤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2010 밴쿠버와 2014 소치에서 이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 최고의 빙속 여자 스프린터로 군림했던 이상화는 미국의 보니 블레어(1988년·1992년·1994년)에 이어 역대 올림픽 두 번째 500m 3연패 달성에는 아쉽게 실패했다. 다만 하지만 이상화는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이자 독일의 카린 엔케(1980년 금메달, 1984년 은메달, 1988년 동메달)와 블레어에 이어 역대 3번째로 3개 대회 연속 포디움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18일 오후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상화 선수가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며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쾌조의 스타트를 끊어서 더욱 아쉬웠던 마무리

15조 아웃코스로 출발선을 끊은 이상화의 초반 100m 기록은 10초20. 전체 31명의 출전 선수 중 최고였다. 이날 금메달을 목에건 고다이라의 10초26보다 0.06초 빠른 출발이었다.

세 번째 코너를 돌 때까지만 해도 고다이라보다 0.2초 앞서며 금메달을 예감케 했지만, 코너를 돌면서 삐끗한 게 컸다. 그 뒤 150m에서 뒤지고 말았다. 이상화 본인도 이를 인정했다. 경기 뒤 이상화는 “스타트가 빨랐다는 것을 나조차 느꼈다. 마지막 코너까지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마치 과거에 세계신기록을 작성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면서 “너무 빠른 속도를 오랜만에 느껴서인지 마지막 코너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갖가지 부상으로 인해 제가 스피드감을 잃은 것은 사실이다. 스피드감을 찾는데만 1년반이 넘게 걸렸다. 다만 이미 미국이나 캐나다 무대에서 36초를 탔던 적이 있던터라 지금도 올라오지 않았다고는 말할 순 없다. 후회 없이 탔다”고 덧붙였다.

이상화는 그동안 무릎과 종아리, 장딴지 등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특히나 괴롭혔던 부위는 무릎이었다. 첫 금메달을 따냈던 2010 밴쿠버에서도 왼 무릎 연골이 손상된 상태였다. 여기에 정맥 내 혈액이 역류하면서 늘어나 피부 밖으로 돌출되는 하지정맥류도 있었다. 이런 부상을 안고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올림픽 무대에서 500m 2연패와 은메달을 따낸 것은 그가 타고난 스케이터이자 얼마나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채찍질을 했는 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상화는 “지난해가 제일 힘들었다. 종아리 부상이 나를 너무 괴롭혔다. 몸은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기록이 너무 안 나왔다. 누군가 나를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18일 오후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상화 선수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녀의 눈물은 억울함보다는 후련함의 의미

은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이상화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할 정도로 서러워보였다. 그러나 이상화는 서러움이나 억울함의 의미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눈물의 의미에 대해 이상화는 “‘이제 끝났구나, 드디어 끝났구나’ 이런 안도감의 눈물이었다. 제가 금메달을 못 따서 슬픈 게 결코 아니었다”면서 “올림픽 3연패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없지 않았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계속 되뇌었다. 다만 경기를 준비하는 시간이 길었다. 훈련도 너무 야간에 몰려있었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그런데 이게 모든 선수가 같은 조건이지 않나. 이제는 내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8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이상화가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을 딴 일본의 고다이라와 활짝웃고있다.
◆‘그 선수’라 부르던 고다이라와 이상화의 뜨거운 우정

이날 이상화가 눈물 흘리던 장면에선 맞수였던 고다이라와의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순위가 확정된 뒤 링크를 돌며 관중에게 인사하던 이상화에게 고다이라가 다가와 무언가 말을 건넸다. 이에 이상화는 눈물을 흘리며 고다이라에게 고개를 기울여 기댔다. 고다이라는 이상화를 감싸 안으며 위로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한일 간의 묘한 국제관계를 넘어선 뜨거운 우정이자 최선을 다한 맞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동스러운 피날레였다.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이상화는 고다이라와의 남다른 우정을 드러냈다. 이상화는 “중학교 때부터 함께 했던 친구 같은 사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고, 이 친구는 1,000m와 1,500m도 뛴다는 점도 '리스펙트'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고다이라는 이상화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이상화는 항상 친절하다.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내게 패해 기분이 상할 법한데도 급하게 공항을 가야했던 내게 택시비를 내줬다. 항상 친절하면서도 스케이터로서도 굉장히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선수다”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이상화는 연신 “아~귀엽다”라고 말하면서 “고다이라와는 휴식기에 만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고다이라에게 져서 기분 나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라고 화답했다.

18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이상화가 레이스를 마친 뒤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있다.
◆팬들의 시선은 이상화의 베이징행으로 향한다.

이제 팬들에게 남은 관심사는 단 하나. 그녀가 4년 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선수로 뛰느냐다. 마침 기자회견에서는 이상화와 고다이라에게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서로 경쟁하길 바라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고다이라는 한국말로 “몰라요”라고 말하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미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베이징행을 묻는 질문에 “몰라요”라며 고다이라와 같은 대답을 한 바 있는 이상화는 기자회견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상화는 “작년에 고다이라에게 ‘평창올림픽 이후 베이징에도 출전할 거냐’고 물어보자, 고다이라는 내가 출전하면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상화는 “적어도 오늘 경기가 선수로서의 이상화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경기는 아닐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면서도 “아직 4년 뒤 올림픽 도전에 대해선 생각해 본적 없다. 우선 제대로 쉬고 싶다”고 말했다.

강릉=남정훈 기자 che@segye.com

사진=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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