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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역사 보존해 리모델링… 가파도, 문화·상생의 섬으로

입력 : 2018-04-15 20:36:42 수정 : 2018-04-15 2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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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현대카드, 6년간 프로젝트 성과

고령화되는 섬, 쓰레기만 남기고 가는 관광객….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가파도의 몇년 전 모습이다. 초등학생은 5명에 불과했고, 관광객들은 두어시간 둘러보곤 급히 떠났다. 한때 1100명에 달했던 인구는 200명 아래로 줄어들었다. 그대로라면 ‘난개발 관광섬’의 전철을 밟았을 지 모를 가파도가 ‘지속가능한 섬’을 향한 실험에 나섰다. 제주도·현대카드가 섬 주민과 손잡고 지난 6년간 추진한 ‘가파도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섬에 새 숨을 불어넣는 이 사업이 지난 12일 첫 공개됐다.

제주도 남쪽 섬인 가파도는 독특한 지형을 자랑한다. 손으로 훑어낸 듯 사방이 나즈막하고 평평하다. 면적은 0.84㎢로 주민등록 기준 170여명이 살고 있다. 청보리 축제 때면 6만명 넘게 찾을만큼 아름답지만 젊은이들이 떠나며 쇠해가는 어촌이기도 했다.

가파도 하우스
‘가파도 프로젝트’는 섬의 매력을 보존하면서 활력을 북돋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중점을 둔 가치는 ‘재생’과 ‘지속가능성’. 화려한 새 건물을 척척 올리는 대신 철거 위기인 빈집을 단장하고, 섬에서 난 수익은 주민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12일 둘러본 섬 곳곳에는 이런 철학이 배어 있었다. 10곳이 넘는 건물들이 리모델링됐지만,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섬 정경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었다. 새로 지은 여객선 터미널은 주변 풍광과 어깨를 맞추기 위해 낮게 엎드린 모양새다. 가파도 김동옥 이장은 “과거 대합실은 아주 급하게 지어 1층도 2층도 아닌, 섬 현실에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외양이었다”며 “새로 들어선 건물은 우리 마을에 가장 적합한 대합실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뿔소라 주먹밥과 한라산잔술을 파는 스낵바에서는 여행객과 주민이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빈집을 개조한 숙박 시설인 ‘가파도 하우스’ 6동도 문을 열었다. 숙소에 들어서면 통창 밖으로 이끼 낀 돌담, 푸른 바다, 청보리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날 들른 가파도 하우스 D동의 경우 현대적 시설을 갖추되 제주 전통가옥 양식을 그대로 살렸다. 현관에 들어서면 작은 마루 양 옆으로 왼쪽은 침실, 오른쪽은 거실이다. 여행객 입장에서는 기존처럼 오후 6시 전에 허겁지겁 섬을 떠나는 대신 느긋하게 바다를 보며 한라산잔술을 음미하고, 가파도의 노을과 제주 본섬의 불빛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기존 농협 창고는 정겨운 마을 강당으로 새단장됐다. 어업센터 역시 어민과 해녀가 이용하기 편하게 바뀌었다. 센터 한 켠에서는 해녀들이 잡은 조개·소라·생선 구이를 맛볼 수 있다. 모든 시설은 주민이 공동 운영한다. 수익도 마을로 돌아간다. 선순환 경제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가파도 프로젝트는 섬의 지형·역사·생태·문화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낡은 것들을 무조건 허무는 대신 원형을 보존하며 새 옷을 입혔다. 자본·자원이 한정된 섬에서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작은 실험도 첫 발을 뗐다. 이 사업에 함께한 최욱 원오원 건축사무소 대표는 “‘가파도 프로젝트’는 예술섬이 아닌 ‘주민과 같이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것’”이라며 “건축 재료도 주민들이 쉽게 고칠 수 있는 소박한 재료를 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노년층이 많다보니 ‘가파도 프로젝트’ 운영에 전 주민이 동의하거나 참여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가파도 프로젝트 자체가 마을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난 사업이 아니다보니 한계가 있다. 김 이장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면서도 “기존에 청보리 축제와 올레길이 생겨나며 마을에 한 차례 변화가 왔다. 이번 프로젝트로 앞으로 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희망을 품었다.

섬에 문화의 기운을 불어넣는 시설은 ‘가파도 AiR’다. 예술가들이 몇 개월간 섬에 살며 작품활동을 하는 건물이다. 20년 가까이 폐허였던 콘크리트 구조물을 그대로 살려 건축됐다. 현재 한국, 덴마크, 영국 등에서 온 작가 7명이 지내고 있다. 올해 총 16명이 방문할 계획이다. 예술가들의 작품에는 가파도의 자연과 사람이 자연스레 스며들게 된다.

작가 선정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큐레이터 등이 참여했다. 이날 오프닝 행사에 온 뉴욕 현대미술관 마르티노 스티어를리 건축 수석 큐레이터는 “과거 건축가들이 도시 개발이나 도시화에 집중했는데 이제야 세계적으로 많은 건축가들이 지역 개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점에서 가파도가 전세계 트렌드의 모범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축하했다.

가파도=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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