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아는 옛 고사에서 무학대사의 눈이 청안이라면 태조 이성계의 눈은 백안이다. 무학대사가 기거하는 도봉산의 절을 찾은 이태조가 무학 대사와 곡차를 마시다 문득 대사에게 이런 농을 시작했다.
“요즘 대사께서는 살이 딩딩하게 쪄서 마치 돼지 같소이다.”
“소승이 돼지처럼 보이십니까? 전하께서는 언제 보아도 부처님처럼 보입니다.”
“아니, 격의 없이 서로 농을 즐기려고 해놓고 대사께서는 과인을 부처님 같다고 하면 어쩝니까?”
“예, 본시 돼지의 눈에는 모든 것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님으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옛 일화처럼 청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처로 보이고 백안으로 보면 세상만사가 돼지로 보이게 마련이다. 불교 능엄경에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나온다. 같은 물이지만 천계에 사는 신은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로 본다는 뜻이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각각 견해가 다름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시각대로 세상을 보고 살아간다. 청안으로 보면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겠지만 백안으로 보면 미운 사람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돼지로 가득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비극일까.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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