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78)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 중 한 대목이다. 클레지오가 자주 쓰는 ‘정적’(靜寂)이란 단어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무관심과 소외의 극점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다가온다. 그가 40대 초반에 열한 편의 단편을 담아 펴낸 ‘원무, 그 밖의 다양한 사건사고’(윤미연 옮김, 문학동네)가 최근 국내에 새롭게 번역돼 선보였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탈주자’에서 보듯 클레지오의 ‘정적’은 ‘몸속으로 들어와 심장을 차갑게 얼리는’ 죽음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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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들의 쓰라린 내면을 단편들에 담아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 그는 비극을 몽환적인 시로 재탄생시켰다. 문학동네 제공 |
“그들은 누가 미친 오토바이를 타고 텅 빈 거리를 돌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들은 회반죽과 돌에 갇힌 죄수들이다. 시멘트가 그들의 살갗을 뒤덮고 그들의 동맥을 폐색시켰다.”
생동하는 것, 살아간다는 것에 관심을 지니고 동참하지 않는 무의미한 삶이란 ‘회반죽과 돌에 갇힌 죄수’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이들 소녀 중 하나가 교차로에서 트럭에 치여 두 다리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는 장면에서도 클레지오는 ‘참을 수 없는 거대한 진공이 그녀를 서서히 잠식한다’고 썼다. ‘진공’(眞空)과 ‘정적’은 그에게 같은 저주이다.

‘안느의 놀이’에서는 그 ‘빛’이 칼날이 되어 연인 ‘안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야기다. 앙투안은 연인이 화물차에 반사된 빛으로 인해 굴곡진 길을 직진하여 계곡으로 불덩이가 되어 떨어져 죽은 지 1년이 지난 바로 그날, 그 길을 다시 간다. 연인이 간 길을 그대로 되밟아 뒤를 따르려는 그 또한 ‘정적’을 몰아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애를 쓰지만, 사위는 적막하고 아무도 없다. 앙투안은 “낯선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건 어쩌면 햇빛, 어머니의 흰 머리칼과 저택의 흰 벽과 자갈길 위에서 마치 집요하게 살피는 눈길처럼 번쩍이는 그 햇빛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정적’과 ‘빛’은 존재의 내면에 뚫린 텅 빈 구멍을 상징하는, 명상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소설가 르 클레지오의 상징 시어인 셈이다.
1982년 발표한 이 소설집은 “현대문명의 난폭함과 현대인의 정신적 공황을 다루던 르 클레지오의 초기 작풍과, 자연으로 회귀하며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과 원시의 힘을 강조하는 중후기의 경향이 비교적 고루 녹아 있다”는 평가다. 1988년 ‘배회, 그리고 여러 사건들’이라는 표제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지만 절판된 책을 이번에 새롭게 번역했다.
소설집에는 이밖에도 서민 임대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다 강간당하는 여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도둑이 된 남자 등 표제 그대로 다양한 사건 사고가 나열된다. 극적인 서사보다는 이것들을 ‘정적’과 ‘빛’으로 소묘해내는 원숙한 작가의 시선이 흥미롭다. 역자 윤미연은 “이 열한 편의 이야기 속에 나타난 삭막함과 황량함이 오히려 우리를 해갈시키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일상에서 원무처럼 반복되는 이 건조한 사건 사고들을 너무도 아름답고 몽환적인 시로 탈바꿈시켜놓은 르 클레지오의 필력과 인간을 향한 진정하고도 가슴 저린 연민 덕분”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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