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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똥꼬충"…성소수자를 향한 가혹한 혐오

입력 : 2018-08-21 08:00:00 수정 : 2018-08-21 14: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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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파시즘-성소수자] 온라인 성소수자 혐오
“이태원 ‘비누파밍’(동성애 성적비하 표현) 남자형들 막 다뤄주세요.”

지난해 12월 한 개인인터넷방송 진행자가 카메라를 들고 서울 용산 이태원에 있는 클럽에 등장했다. 해당 클럽은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클럽으로 그는 신기해하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진행자는 “난 성소수자 분들이 예쁘장한 남자분들인 줄 알았는데 털보형님들도 있더라”라면서 클럽 안의 성소수자 얼굴을 고스란히 담았다.

영상이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반발했다. 누리꾼들은 “본인들의 동의 없이 성소수자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았다”며 청와대 청원까지 올렸다.

해당 진행자는 과거에도 성소수자를 앞에 두고 “엉덩이를 안 보이겠다”, “똥독 같은 거는 안 걸리나요” 등 발언을 하는 등 논란을 낳은 바 있었다. 해당 진행자는 관련 행동에 대해 사과 후 영상을 내려야 했다.

◆“변태” “호모” “똥꼬충” 온라인에 팽배한 성소수자 혐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간한 용역 보고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성소수자는 온라인상에서 ‘더럽고 성관계에 집착하는 문란한 존재’에 비유되곤 한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너 레즈냐?” “게이인줄” “변태” “호모” “똥꼬충” 등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있었다.
지난해 6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아시아 성소수자 합창페스티벌 ‘핸드 인 핸드 서울 2017` 기자회견 현장. 연합뉴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상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한 성소수자는 96.5%에 달했다. 성소수자 대부분이 온라인 혐오표현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표현은 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 성소수자의 자존감을 낮추거나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으로 이어지곤 한다.

성소수자 84.7%는 자신에 대한 비난의 두려움이 크다고 호소했다. 한 성소수자는 인권위와 인터뷰에서 “저랑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듣거나 ‘너도 게이냐’부터 ‘둘이 했냐’ 같은 성적인 농담을 들어야 하는 친구가 있었다”며 “저는 그 친구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일부러 멀리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더럽고, 역겹고, 문란하게 묘사되는 성소수자

성소수자들을 향한 혐오표현들은 ‘오염’을 떠올린다. 더럽고, 역겹고, 문란하고, 질병 같은 존재로 성소수자들은 묘사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2016년 저서 ‘혐오에서 인류애로’에서 “(성소수자 혐오는) 배설물, 침, 소변, 정액, 피 등 온갖 육체적 부산물과 위험한 병을 옮기는 병균에 대해 계속 말한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 혐오가 이성적 분석보다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행사. 세계일보 자료 사진

그는 성소수자 혐오표현에 대해 “게이에 대한 역겨움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그들의 행위를 질병이나 위험과 연관시키고자 한다”며 “질병 자체에 대한 공포에 호소하는 것은 더 나아가 혐오에 대한 호소를 포함한다”고 했다. 동성애 반대 집회에서 외치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위험은 성소수자 혐오를 더욱 부추긴다.

종교적 이유로 성소수자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남자와 여자로 나뉘는 인간의 순리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외의 소수자는 신이 만든 세상의 ‘역리’로 간주한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은 ‘사회악’, ‘죄악’, ‘사탄’ 등의 단어로 성소수자를 정의하며 혐오를 부추긴다.

◆보수단체 반대에 차별금지법 제정은 난항

유엔은 2007년부터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있다.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법으로 규제하자는 것이다. 세차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보수단체들은 차별금지 사유에 담긴 ‘성적 지향’을 문제 삼아 모두 무산됐다.

법무부도 지난 8월 2018년부터 2022년 정부 인권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자는 계획이 담겼다. 보고서에는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종교계의 이견이 크다”며 “다양한 차별금지 사유와 영역을 포괄적으로 규율함으로써 차별금지 관련 입법적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동성애 반대 단체들은 전국적으로 NAP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어 차별금지법에 반발했다. 차별금지법이 자칫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정치인들은 표심을 고려해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성소수자인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향해 “성 정체성 혼란을 겪는 분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입장이었지만 화장을 많이 한 모습”이라고 비꼬아 논란이 됐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동성애가 인정되면 에이즈와 출산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성소수자를 비난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편집자주>
각종 혐오 언행(Hate Speech)으로 대한민국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회통합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권인 29위. 세계일보는 기획 ‘혐오의 파시즘’을 통해 대한민국에 짙게 드리운 혐오의 구조와 심연을 들여다보고 해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혹시 자신이 겪은 사회적 혐오, 혐오로 인한 피해 사례나 경험을 알려주시면 논의를 통해 기사로 공유하겠습니다. 이메일은 kimgija@segye.com 또는 homospiritus1969@gmail.com, 전화번호 02-2000-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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