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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한반도 해역에서 '생명연장의 꿈' 이루다? [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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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30 14:34:01 수정 : 2018-08-30 14: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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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가져올 태풍의 미래 / 한반도 해역 수온 계속 상승중 / 지난 50년간 표층 온도 1.23도 ↑ / 세계 평균 0.48도의 2.6배 달해 / 양쯔강 담수 서해 유출 등 영향 / 동태평양의 수온 상승 ‘엘니뇨’ / 더 먼바다서 태풍 만들어 이동 / 바닷물 열기로 연료 다시 충전 / 우리 해역서 더 강해질 가능성 / 2100년 쯤 2~3도 더 오르면 바다 데워지고 수증기도 증가 / “태풍 강도 더 세지고 늘어날 것” / 온난화·태풍 악순환 부를 수도
“머리가, 머리가 이상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가뜩이나 식량도 간당간당한데 정신줄마저 놓치겠네…”

‘슈퍼 태풍’인 줄 알았는데 ‘설레발 태풍’으로 격하된 제19호 태풍 솔릭을 제주 해상에서 인터뷰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흔히 태풍을 만드는 세 가지 요소로 26도 이상의 따뜻한 바닷물과 약한 상층 바람, 다습한 공기를 꼽습니다. 솔릭은 이 세 가지를 원료로 제주 지역까지 열심히 북상했는데, 뒤따라오던 제20호 태풍 시마론의 훼방으로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하필 그곳은 태풍을 끝없이 자라게 만들 만큼 따뜻한 곳도 아니었고(간당간당한 식량), 상층에는 편서풍 기류가 지나면서 태풍 상부를 흐트려 놓았습니다(어질어질한 머리).

기상청은 의도하지 않게 이번에도 ‘오보청’이라는 비난을 한껏 받았지만, 어찌됐건 최악의 피해는 면했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주 해역이 열대지역만큼이나 따뜻하고, 편서풍도 매우 약했다면 어땠을까요. 이미 지나간 태풍을 두고 그런 가정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요? 그게 바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날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일 미항공우주국(NASA)의 테라 위성이 찍은 제19호 태풍 솔릭의 모습.
미항공우주국
◆태풍, 한반도 해역에서 생명연장의 꿈을 이룬다?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오르면 태풍 발생횟수는 줄고 강도는 커질 것이라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회’(IPCC) 5차보고서를 보면 ‘태풍(tropical cyclones) 발생횟수는 줄거나 변동이 없겠고, 동시에 바람 강도와 강수량은 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2015년 ‘네이처 기후변화’에도 태풍 강도와 발생횟수 사이에는 일종의 ‘거래’가 이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옵니다.

지난 30년간 해수면 온도는 0.3도 올랐는데, 그러면서 전 세계 열대저기압(태풍) 발생 개수는 6.1개 줄어든 대신 풍속은 초속 1.3m 늘었다는 거죠. 즉, 태풍이 하나 줄 때마다 태풍의 최대 풍속은 초속 0.21m씩 늘더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는 지구 전체 평균을 따졌을 때 그렇고, 지역별로는 차이가 납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북서태평양에서는 태풍 발생도 늘고, 강도도 세질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허창회 서울대 교수는 “고수온 해수면의 북상, 저기압성 순환 증가 등으로 2100년에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치는 태풍의 수가 현재의 일본 만큼이나 늘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연간 1개 안팎, 일본에는 2∼3개의 태풍이 상륙했으니까 금세기 말에는 태풍의 내습이 지금보다 적어도 2배는 많아진단 것이죠.

달갑지 않은 손님이 자주 찾아오는 것도 모자라 횡포도 심해질까봐 걱정입니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태평양 중에서도 적도 지역 동태평양 수온이 더 오를 것이라고 하네요. 적도 동태평양의 수온 상승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죠? 바로 엘니뇨가 이런 현상을 말합니다.

태평양에서 태풍은 주로 필리핀∼괌 이 부근에서 생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엘니뇨가 일어난 해를 보면 보다 동쪽에서 만들어지곤 했죠.

최우석 서울대 BK21+ 지구환경 과학사업단 박사는 “기후변화로 미래 태평양 해수온도 분포가 엘니뇨 때처럼 변하면 더 먼바다에서 태풍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태풍은 우리나라로 올라올 때까지 더 오랜 시간 더 먼거리를 바다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강해질 소지가 많다”고 전합니다.

보통 태풍은 대만, 그러니까 북위 25도를 지나며 전성기를 넘기곤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우리나라 해역에서 회춘할지도 모릅니다. 한반도 해역의 수온 상승세가 심상찮기 때문입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최근 50년간(1968∼2017년) 우리나라 해역의 표층수온은 1.23도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전세계 표층수온 상승폭(0.48도)보다 무려 2.6배나 많이 오른 것이죠. 육지에 둘러싸인 폐쇄적인 바다 형태, 주변의 급속한 산업화처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유 말고도 원인은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 대마난류와 양쯔강 유출수도 있습니다.
대마난류는 필리핀 동쪽→대만→동중국해→오키나와로 향하는 따뜻한 쿠로시오 해류의 지류입니다. 이름처럼 쿠로시오 해류에서 갈라져나와 쓰시마섬(대마도)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데, 80년대부터 이 대마난류의 유입이 많아졌다고 하네요. 그 원인은 오리무중입니다만 올 5월 이후에도 대마난류의 유량이 평년보다 20%나 많다고 합니다. 온수를 많이 틀어놨으니 수온이 오를 수 밖에요.

여름철에는 서해의 온난화가 두드러지는데요, 양쯔강 담수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인성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여름철 중국 대륙에 강우가 많다보니 양쯔강에서 담수가 많이 흘러나오는데, 담수는 (염분이 없어) 밀도가 낮아 위로 뜨게 되고 쉽게 열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솔릭의 사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상층의 거센 바람은 태풍의 천적입니다. 그런데 온난화로 편서풍 혹은 제트기류가 느려지고 있죠. 이래저래 우리나라 주변 환경은 태풍에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구가 더 뜨거워진다면?

파리 기후변화협정은 금세기 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폭을 2도 아래, 가능한 한 1.5도 아래로 묶어두자는 것이죠. 그렇지만 IPCC 보고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50년 이전 수준으로 줄어드는 ‘초긍정 시나리오’(RCP2.6)에서도 지구 온도는 0.3∼1.7도 오를 것으로 전망합니다. 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RCP4.5, RCP6.0)에서는 1.1∼3.1도가 오를 것으로 보고 있죠.

정말로 2100년쯤 지구 온도가 2∼3도 오르면 태풍은 어떻게 될까요? 혹시 막강해진 태풍이 지구 온도에 역습을 가하지는 않을까요?

2010년 네이처에는 이 물음에 어쩌면 힌트를 줄 수도 있는 흥미로운 연구가 실렸습니다.

미국 예일대에서 고기후와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알렉세이 페도로프 교수는 지금으로부터 300만∼500만년 전인 플라이오세에 눈을 돌립니다. 그의 궁금증은 이렇게 출발하죠.

‘플라이오세 때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금과 비슷한데도 지구 온도는 지금보다 2∼3도 높았다. 태양의 밝기나 대륙의 배치도 온도에 영향을 주지만, 이 또한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그럼 과연 무엇때문에 지구 온도가 올라간걸까?’

그는 플라이오세 지구 환경에 관한 정보를 토대로 당시 태풍이 어디서 얼마나 일어났는지 복원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열대태평양이라면 동서남북을 가릴 것없이 여기저기서 태풍이 발생했습니다. 지금은 앞서 필리핀∼괌이라고 말한 북반구 서태평양에서 대부분 만들어지는데 말이죠.
중·동태평양 태풍이 빈번해지는 것과 온난화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려면 바닷물의 흐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적도 동태평양에서는 늘 바닷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옵니다. 표층에 닿은 바닷물은 적도 바깥으로 흘러가다 다시 가라앉아 적도 쪽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위로 떠올라 적도 밖으로 나가고 하는 순환이 끊임없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태풍이 일어나 따뜻한 상층 바닷물과 차가운 하층 바닷물이 마구 섞이면 하층의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겠죠. 보다 따뜻해진 해수가 적도로 이동해 표층으로 올라오면 적도 동태평양이 평소보다 달아오르겠죠. 어라? 적도 동태평양이 뜨거워진다니, 또 다시 엘니뇨가 등장했네요.

플라이오세 때는 이런 과정 때문에 엘니뇨가 수시로 발생했고, 바다가 더워진 탓에 수증기 발생이 늘어나 (수증기도 주요한 온실가스입니다) 온난화를 일으켰으리란 게 페도로프 교수의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에 모든 학자들이 수긍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박두선 조선대 교수는 “상당수 연구에서 지금보다 중앙태평양에 태풍 발생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면서 “태풍이 (온난화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혀 터무니 없는 주장은 아닌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우리의 미래가 플라이오세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온난화가 태풍을 부르고, 태풍이 다시 온난화를 부를 수도 있단 얘기죠.

설레발 솔릭 예보처럼 이런 예상도 엇나가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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