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봄, 그와 인상이 비슷한 청년 창업가를 인터뷰했다. “인생은 짧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미친’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창업에 뛰어든 열혈 청년이었다. 서울대 치의예과를 졸업한 뒤 삼성의료원에서 전공의로 일하다 창업에 나섰던 그는 당시에는 ‘스펙’으로만 떴다. 그러나 이제는 어엿한 스타트업계 거인이 됐다.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에 2년 연속 이름을 올린 모바일 금융 서비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36) 대표 얘기다. 토스는 누적 다운로드 수가 2000만건을 넘었고, 이 대표는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의 첫 방미 일정에 52개 기업 대표단 중 한 명으로 동행했다.
이천종 산업부 차장 |
이처럼 보수와 진보 모두 공감하는 길이건만 현실에서 혁신성장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동안 지겹도록 들어서 우리 모두 혁신성장이 왜 어려운지 정답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기득권으로 얽히고설킨 규제가 혁신성장의 최대 걸림돌이다.
문 대통령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28일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혁신성장은 신산업·신기술에 대한 규제혁신이 필수다. 민간의 상상력이 낡은 규제와 관행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현정부 출범 이후 문 대통령이나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주재한 회의도 30차례가 넘고, 관련 대책 발표도 쏟아졌다.
그러나 결과는 또다시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커지고 있다. 현재 인터넷전문은행법 정도를 제외하고 별반 진전된 규제혁신 성과가 없다. 금방 뜰 것 같던 공유경제 모델은 이익단체 반발과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 앞에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돌아보면 인류 역사에서 기득권을 가진 계층이 스스로 이익을 포기한 일은 없다. 규제 개혁은 기득권의 강한 저항을 부른다. 승차공유(카풀)와 숙박공유·원격의료 등만 봐도 택시업계와 숙박업계, 의료계가 한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들은 대의명분을 내세운 노동조합과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실세 정치인들과 함께 촘촘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있다.
이처럼 사활을 걸고 진지를 구축 중인 기득권에 맞서 규제혁신을 실행해야 할 관료는 지금 무력해 보인다. 일단 태생 자체가 보수적인 공무원을 개혁의 선봉에 세울 당근이 별로 없다. 규제 개혁으로 성과를 내봐야 보상은 없고, 사고라도 터지면 좌천되는 현재 인사시스템에서 일할 ‘선수’가 나올 리 만무하다. 이들은 자신이 보직을 맡은 1∼2년만 버티다 후임자에게 폭탄을 돌리는 것이 살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중앙부처 국장급 간부는 “지금 일 잘한다고 인정받다가 나중에 ‘적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서 “규제 개혁을 위해서는 진급과 승진, 처벌, 감사 등 인사제도 문제를 손질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규제도 규정·절차 중심에서 목표·성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영국은 1974년부터 기존의 명령통제 방식에서 탈피, 목표를 설정하고 규제당국과 현장의 피규제자들이 협업하는 방식으로 산업안전규제를 탈바꿈했다. 그 덕에 2015년 유럽연합(EU) 가운데 산업재해율 최하위권 국가로 기록됐다. 한국 경제를 둘러싸고 안팎으로 안개가 자욱한 지금이 어쩌면 규제 개혁에 메스를 들이댈 마지막 골든타임인지 모른다.
이천종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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