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첫눈이 겨울을 알렸다. 기록적인 첫눈이었다. 서울에 내린 눈이 8.8㎝ 쌓이며 1981년 이래 첫눈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날 12시 기준 최종 8.8cm를 기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의 첫눈 관련 구체적인 기록이 있는 1981년 이래 가장 많은 적설량은 1990년 4.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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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내린 지난달 24일 오후 7시쯤 서울 종로구 한 도로변에 설치된 한 제설 도구함에는 넉가래 3개, 눈삽 3개, 빗자루가 비치돼 있다.(왼쪽) 다른 제설 도구함에는 눈삽 2개 빗자루만 남아 있다.(오른쪽) |
이와 달리 폭설이 반갑지 않는 시민도 있었다. 서울 곳곳에는 '거북이걸음'을 하는 차들로 혼잡이 빚어졌다. 눈이 녹지 않은 골목길에서 차들은 바퀴가 겉돌면서 힘겹게 다니고 있었다.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약 시속 5㎞로 서행했다. 이날 큰 도로에 쌓인 눈은 쉽게 녹았지만, 외진 공터와 건물 옥상에 오후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폭설인 내린 지난달 24일부터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중구, 서대문구, 종로, 용산 등 설치된 제설 도구함 21곳을 무작위로 둘러보았다. 이 중 14곳이 없어지거나 훼손된 제설 도구와 쓰레기만 가득 쌓인 채 방치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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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남산순환도로 한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제설 도구함에는 빗자루 2개만 남아 있다. 제설도구함 주변에는 훼손된 채 방치된 제설 도구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
제설 도구는 기본 넉가래 3개, 빗자루 3개, 눈삽 3개로 구성돼 있다. 눈이 내리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제설제(염화칼슘·모래)도 구비했다. 서울시는 ‘주민 자율 참여를 위한 무료 제설 도구함 설치·운영’을 위해 지난해 총 5500만 원을 투입했다. 자치구당 10곳씩 비치할 수 있도록 제설 도구를 일괄 구매해 지원한 것이다.
성북구와 광진구는 자체 예산을 들어 추가로 제설 도구를 설치했다. 제설 도구함은 총 약 340개소로 구성됐다. 서울시와 자치단체는 모니터링 통해 버스정류장, 지하철 역사 주변 등으로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첫 눈이 내린 날 종로구에 설치된 제설 도구함을 살펴봤다. 빗자루 등 도구는 없어지거나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었다. 반드시 있어야 할 넉가래, 눈삽은 사라진 채 나머지 제설 도구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부 제설 도구함에는 쓰레기통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쓰레기가 들어있었다.
종로구의 한 관계자는 “지속해서 관리하고 있다. 눈 예보가 있을 때나 관리가 필요할 때마다 채우고 있다”고 했다.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제설작업에 참여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일부 시민들은 제설 도구를 가져가고 있었다. 빗자루와 함께 눈삽이 없으면 염화칼슘과 모래를 동시에 섞어서 뿌리기는 힘들다. 눈이 내렸을 때 시민들이 자유롭게 제설작업을 할 수 있도록 제설 도구가 온전히 있어야 했지만 현장 취재결과 그렇지 못했다.
중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아쉬울 땐 쓰고, 쓴 뒤 갖다 놓기가 귀찮다보니 집에 두고...뻔 한 거 아니에요? 없어지면 구청 탓하고 텅 빈 제설 도구함을 볼 때 마다 허탈감마저 느낍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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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오후 7시쯤 서울 종로구 한 도로변 설치된 제설 도구함에는 제설용 눈삽 3개, 빗자루 1개 넉가래 2개가 남아 있다. 제설 도구함에는 빗자루, 넉가래, 눈삽 각 3개씩 비치돼 있다. |
용산구 주민 최모씨는 기자와 만나 “‘누구나 쓸 수 있고 없어져도 내 탓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문제다”라며 “부러지고 훼손하는 거야 이해할 수 있지만, 없어지는 것은 좀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귀찮더라도 깨끗이 쓰고 그대로 뒀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용산구 관계자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지속적인 관리를 하고 있지만 채워 넣으면 그 다음 날 없어지는 경우가 있어 눈 예보가 있거나, 민원이 접수된 곳부터 순차적으로 채워 넣고 있다”며 “여러 시민이 쓸 수 있는 제자리로 갖다 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제설 도구함에는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용 후 제자리에 놓아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제설 도구에도 분실방지를 위해 ‘공공재산’임을 알리는 문구 부착돼 있었지만, 곳곳에 설치된 제설 도구는 없어지거나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었다.
서울시 측은 “지난해 설치된 제설 도구들이 시민들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서 “제설 도구를 챙겨 가시는 분들에게 공공물품인 만큼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부탁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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