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행위에 대해 ‘사기 범죄’라는 의견과 ‘죄가 아니다’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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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티파니. 티파니 인스타그램 |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상당수의 ‘채무불이행’ 사례가 사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채무불이행을 사기 범죄로 동일시 하면서 불필요한 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법조인들은 사기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 ‘고의성’ 입증이 가장 우선이라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빚투’는 사기 사건으로 봐야하나
형법에서 ‘고의’는 범죄 사실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의란 행위자가 그 불법행위를 하기 위해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말한다. 형법 제13조에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며 범죄의 성립에 고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표적인 사기죄는 ‘무전취식’을 말할 수 있다. 식당이나 술집에 들어가서 음식과 술을 섭취한 뒤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사기죄가 적용되는게 일반적이다.

무전취식 사건에서 피의자는 자신에게 돈이 없는 사실을 인지했거나, 지불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먹은 점에서 ‘고의성’이 성립된다. 이같은 행위로 인해 식당 주인에게 금전적 손실이 발생한 만큼 사기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다만 집에 지갑을 두고 온 사실을 잊고 식당을 찾았다가 당장 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고의성에 해당되지 않아 사기 혐의 적용이 어려운 이유다.
‘빚투’ 역시 고의성과 연장선상에 있다. 채무자가 차용증을 작성하거나, 구두 약속 등을 통해 돈을 빌린 후에 갖가지 사유(?)로 돈을 갚지 않아도 사기 혐의 적용은 난감하다. 고소·고발하는 쪽이 채무자가 돈을 빌리기 전 부터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고의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채무자가 돈을 갚을 의사가 처음부터 없었다면 사기죄에 해당되지만, 돈을 갚을 생각은 있는데 어려운 사정 때문에 갚지 못한다면 사기죄 적용이 어렵다. 후자의 경우 형사 고소가 아닌 가압류신청, 압류추심명령 등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고의성이 적용되는 또다른 영역은
형법에서 ‘고의성’이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사기죄 뿐만 아니다. 다른 죄에서도 고의는 처벌의 잣대가 된다.
대표적으로 ‘무고죄’가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A(36)씨는 몇 년전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렸다. 성관계를 가졌던 여성이 ‘자신을 강간했다’며 준강간 혐의로 고소한 탓이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A씨의 무혐의가 밝혀졌지만, A씨는 상대 여성을 무고죄 혐의로 고소하지 못했다.
A씨가 상대 여성을 무고죄로 고소하지 못한 이유는 역시 ‘고의성’에 있었다.

만약 해당 여성이 A씨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고소했거나 금전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무고죄 성립이 가능할 법 했지만, 합리적인 의심으로 A씨를 고소한 만큼 무고죄에 해당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무고죄를 인정받으려면 ‘고의 여부’가 중요한 판가름이 된다”며 “성범죄 혐의가 무죄로 나왔어도 상대방의 합리적인 의심이 있었다면 무고죄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밖에 죄는 인정되지만 고의성 여부에 따라 처벌 수준이 크게 엇갈리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사람이 죽은 사건·사고에서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살해했으면 ‘살인죄’에 해당된다. 처벌 수위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가장 높다.
반면에 사람이 죽었어도 살해할 의도가 없는 과실이었다면 ‘과실치사죄’에 해당된다. 형량 역시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수위가 낮다. 물론 폭행치사죄나 업무상 과실치사죄, 중과실치사죄의 경우 형이 가중된다.
◆미필적 고의란
형법에서는 ‘고의성’을 조금 넓게 해석하는 편이다. 보여지는 의도가 없더라도, 행위자가 자기의 행위로 인해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예측한 상태라면 형법에서 죄를 물을 수 있다. 이른바 ‘미필적 고의’다.
미필적 고의의 전형적인 심리로는 ‘혹시나 죽을(다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형법전에는 미필적 고의라는 단어가 없다.
예를들어 지난 2014년 제28보병사단에서 벌어진 의무병 살인사건이 ‘미필적 고의’가 적용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가해자인 이모 병장은 생활관에서 피해자인 윤모 일병을 구타해 숨지게 했는데, 이 병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폭행치사가 아닌 살인죄였다.
이 병장이 윤 일병에게 저질렀던 가혹행위는 보여지는 살해 의도는 없었어도 ‘이렇게 때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심리가 있어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세월호 참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안전불감증 사고의 경우 미필적 고의의 입증이 어려워 적용 기준을 두고 지속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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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시 미필적 고의로 인해 살인죄 선고를 받은 이준석 선장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경우 책임자의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과실범으로 판단했고,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의 경우 예외에 예외 상황을 적용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겨우 적용됐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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