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영 ‘서울탄생기’ 출간 / 최인호 작가 등 16명의 작품 110편 / 당시 서울 사회상 생생하게 묘사 / 시골읍내 같던 동네에 개발 광풍 / 너도나도 잘살겠다는 욕망 넘실 / “강남, 벼·감자 알맹이 따위가 아닌 황금을 직접 번식시키는 땅” 서술 1968년 발표된 박태순의 소설 ‘도깨비 하품’의 주인공 ‘주황’은 말죽거리(지금의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일대)에 200평의 땅을 산다. ‘강남 불패의 신화’를 알고 있고, 목도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주황의 선견지명을 부러워하겠으나 소설 속 그는 “도깨비 하품 같은 소리나 지껄이는” 조롱의 대상이다.
1971년 나온 최인호의 ‘미개인’은 말죽거리 인근 ‘S동’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에 어리둥절해한다. “이곳 주민들은 모두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뛰어오르는 땅값에…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박완서가 1978년에 내놓은 ‘낙토의 아이들’. 화자인 ‘나’는 황무지일 뿐인 한강 인근의 아파트에 입주한 뒤 택지값이 열 배, 스무 배로 폭등하는 걸 부채질하는 게 “아내와 탁 사장과 그 밖의 무수한 그들의 동업자들이 하는 일”임을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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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일대 풍경. 1960년대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강남에 개발이 이뤄지며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다. 청계천박물관·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
불과 10년 새이지만 세 소설이 포착하는 강남과 강남 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의 편차는 크다. 그것은 1960∼70년대 강남으로 본격적인 확장을 해가던 서울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때문이다. 당시 서울은 새롭게 탄생하고 있었고, 서울 사람들의 삶 또한 크게 바뀌었다.
최근 출간된 ‘서울탄생기’(송은영 지음, 푸른역사)는 그 시절 발표된 16명 작가의 작품 110여편을 뜯어보며 당시 서울이 현대도시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문학을 통해 규명하고자 한다. 저자는 그것이 “지리적 공간들이 체험되고 이용되며 인식되는 방식과 그 의미”를 발굴하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강남 이야기에 눈길이 가는 건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강남은 ‘서울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사회가 가진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가장 날카롭게 표현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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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지금의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일대인 말죽거리 근처의 경부고속도로 공사현장 모습. 1960년대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강남에 개발이 이뤄지며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다. 청계천박물관·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자 시골 읍내 같던 ‘미개인’의 배경 S동에는 개발의 광풍이 몰아친다. 이제 S동의 주민은 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돈이, 재산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었다.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경제적 수혜를 입게 된 지역들이 배제와 폭력으로 치닫는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는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는데, 그것의 재료가 된 것이 1969년 4월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실제 발생한 나환자촌 ‘에틴저 마을’ 사례다. 당시 내곡동 주민들은 에틴저 마을의 ‘미감아’(한센병 환자의 자식이지만 병에 걸리지 않은 아이들)들과 자신들의 자식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며 등교를 거부했다. 혐오시설은 물론 임대아파트 건설이나 장애인학교 건립까지 반대하는 요즘의 세태를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 소설이 “개발 이데올로기에 편승해 너도나도 잘살아보겠다는 개인들의 경제적 욕망의 팽창이, 사회적 약자들을 폭력적으로 축출하고 배제하는 작업과 함께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불길하게 예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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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부인은 강남 개발 시기에 대중화된 부동산 투자 열기를 상징하는 존재다. 사진은 복부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은 영화 ‘복부인’의 한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
강남 개발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시절을 들여다보는 ‘낙토의 아이들’에서는 강남에서 시작된 ‘투기의 대중화’가 도드라진다. 화자인 ‘나’는 박봉에 시달리는 시간강사로 황무지의 아파트조차 겨우 마련한 처지다. 하지만 아내는 한강변의 이 아파트에 입주하며 “하루하루 생기발랄해지고 당당해졌다.” 아내는 부동산 중개업자 ‘탁 사장’과 동업하며 빚까지 끌어다 소유한 아파트를 늘려 재산 증식에 남다른 수완을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부동산 투기는 일제강점기에도 있었고, 1960년대에는 강북지역에서 성행했다. 이때에 투기의 주체는 개발정보를 빨리 알 수 있는 특권층과 일부의 토지브로커였고, 대부분의 사람은 언론을 통해 부동산 투기에 대한 보도와 소문을 듣는 정도였다. 그러나 1970년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고,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중산층이 성장하는 등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투기는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박완서는 소설 ‘부처님 근처’(1973년)에서 “친척들과 친구들의 관심은 땅을 동부지구에 사두는 게 더 유리한가, 영동지구에 사두는 게 더 유리한가에 있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전한다.
투기의 대중화와 함께 땅을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박완서는 ‘낙토의 아이들’에서 이런 변화를 “이곳의 땅은 시시하게 벼 포기나 감자 알맹이 따위를 번식시키진 않았다. 직접 황금을 번식시켰다”고 서술했다. 저자는 “황금이 나오는 땅은 파는(dig) 곳도 아니고 사는(live) 곳이 아니며, 바야흐로 사는(buy) 곳이 되었다”며 “강남 개발은 전통적으로 거주와 생활의 측면에서 평가되던 공간이 경제적 이익 산출의 관점으로 평가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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