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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무너뜨린 혁명광장 썰렁… 국민들은 부패에 염증 [신통일한국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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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2 06:00:00 수정 : 2019-02-11 21: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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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체제전환국을 가다/② 루마니아
1989년 시위·총격전으로 정권 뒤집어/폭정 차우셰스쿠 부부 총살로 막 내려/부쿠레슈티 혁명광장 곳곳 그날의 상흔/희생자 이름 새긴 기념비만 덩그러니
공산당 세력이 실권 장악 ‘반쪽 혁명’/소프트웨어 분야 기술력 뛰어나지만/2007년 유럽연합 가입 불구 경제 낙후/
박탈감 큰 젊은이들 서유럽 이주 희망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의 헨리 코안다 국제공항에는 다른 나라 공항에서는 볼 수 없는 택시 번호표 기기가 있다. 지난해 12월 말 직항이 없어 폴란드를 경유해 부쿠레슈티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으나 택시 번호표 기기를 이용해 시내 호텔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무인 택시 번호표 기기는 시내 호텔 숙소에서도 볼 수 있었다. 택시 선택 화면에 뜨는 택시 회사 버튼을 누르면 출력되는 번호표를 받아 번호표에 적힌 택시가 도착하면 타고 가는 방식이다. 루마니아를 찾은 외국인이 공항에 도착해 처음 놀라는 풍경이다.


이 무인 택시 번호표 기기는 루마니아 소프트웨어 기술력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루마니아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파악한 중국의 세계적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는 이미 루마니아에 진출해 수도 부쿠레슈티 곳곳에 ‘화웨이’라고 적힌 대형 옥외 간판이 걸린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루마니아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루마니아는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나라”라며 “체제전환 이후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했고 앞으로 그 가능성이 더 큰 국가”라고 평가했다.

혁명기념비와 희생자 명부 1989년 루마니아에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12월 혁명이 일어났던 수도 부쿠레슈티의 혁명광장.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하얀 대리석의 25m 높이 탑은 1989년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는 혁명 기념비다.
루마니아는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정작 루마니아 사람들은 이제 이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일반 주민에게 차우셰스쿠는 이미 오래전 과거이자 외국인을 겨냥한 관광상품의 키워드일 뿐이다.



부쿠레슈티 한복판에 자리 잡은 거대한 인민궁전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친분이 두터웠던 차우셰스쿠가 북한의 주석궁을 보고 난 뒤 지었다는 이 건물은 1989년 혁명 이후 현재는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다. 루마니아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이 꼭 들러보는 관광지인 이곳은 차우셰스쿠 부부의 광적인 사치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호화롭게 꾸며진 수천 개의 방과 홀, 5t짜리 샹들리에 등 사치스러움의 극치를 드러낸다. 인민궁전을 방문한 외국인 전문 가이드로 활동하는 현지인은 “인민궁전은 99% 루마니아산”이라며 “건물을 지을 때 루마니아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해외에서 자재를 수입할 여력이 없었기에 대부분 국산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념비 주변을 둘러싼 돌벽에는 희생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난해 12월22일은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몰아낸 루마니아 혁명이 일어난 지 29년째 되는 날이었다. 이틀간의 시위와 총격전 끝에 시위대가 루마니아 국영방송사를 장악했고 사흘 뒤인 성탄절에 차우셰스쿠 부부는 총살당했다. 부쿠레슈티 혁명광장 주변 건물에는 당시 총격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도 조성돼 있다. 하지만 혁명 당일을 기념하는 공식 행사 같은 것은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2일 오전 기자가 혁명광장을 찾았을 당시에는 지나가다 기념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 몇몇과 쓸쓸한 표정으로 짙은 색 빵모자를 잠시 벗고 묵념을 하고 돌아가는 노인 한 명을 목격했을 뿐이었다.



독재자 처형이라는 가장 극단적 방식의 체제 전환 방식을 택한 루마니아였지만 당시 혁명은 ‘반쪽짜리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혁명 이후에도 공산당 세력이 여전히 생존해 실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세르반 치오쿨레스쿠 부쿠레슈티대 교수는 “루마니아 혁명이 실패한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루마니아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한 이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는 고질병은 부패다. 2015년 11월 혁명 이후 최대 인원인 50만 명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부패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부패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2007년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루마니아 젊은이들이 서유럽 국가와의 국력 차이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는 문제도 과제로 남아 있다. 루마니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믈라덴 라우렌티우(25)는 “하루 전기공급 시간이 2∼3시간밖에 되지 않고 먹을 빵을 구하려면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려야 했던 차우셰스쿠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며 “하지만 지금의 루마니아 정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고 나 역시도 덴마크나 네덜란드 같은 국가로 이주하면 더 나은 삶을 누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언론홍보학을 전공한 뒤 루마니아로 돌아와 우버 운전기사를 하고 있는 블라두트 가브리엘(26)은 “루마니아 임금 수준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어렵다”며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뒤 루마니아로 돌아온 것이 실수였고 여기서는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만간 독일 베를린에 가서 새로운 일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부쿠레슈티=글·사진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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