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거리와 시간 부담 없이 사계절 쉽게 갈 수 있는 관광지 하면 아마도 경기도 가평일 것이다. 별다른 준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콧바람을 쐬고 싶을 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기자는 최근 가평을 찾았다. 겨울에도 호명산과 잘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지는 북한강의 청평호수는 일품이다. 가는 길에 차창으로 들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 하는 것만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충분하다. 이곳 명소인 아침고요수목원과 쁘띠프랑스에서 밤마다 별빛축제가 열리는 데다 새로운 음악명소가 생겼다고 해서 오랜만에 찾았다. 때마침 우연히 들른 가평 오일장에선 아련한 추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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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고요수목원 아침광장 하늘길. |
◆수목원에서 열리는 빛의 축제
서울 집에서 차를 몬 지 1시간도 채 안 돼 어느새 인적이 드문 북한강변을 도로를 달리다 보니 평일 일상 탈출을 실감할 수 있다. 기자가 먼저 찾은 곳은 해발 880m 축령산 자락에 조성된 아침고요수목원. 매년 10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 가평의 명소다. 국내 최초의 정원식 수목원으로 평가받는 이 수목원은 1996년 삼육대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가 개원한 곳이다. 단순히 식물 수집 개념이 아닌 원예미학적인 관점으로 한국의 미를 최대한 반영해 계절·주제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보유 종이 1760종에 이른다. 특히 이곳은 2015년부터 연속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침엽수정원, 능수정원, 분재정원, 허브정원, 하경정원, 아이리스정원, 단풍정원, 매화정원, 한국정원 등 19개 주제 정원으로 이뤄져 있다. 원내 작은 계곡과 허브 매장, 기념품 매장 등도 볼거리다. 수목원 근처로 많은 민박집과 펜션이 들어섰고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요즘 밤에도 전국에서 방문객이 몰린다. ‘빛과 자연의 하모니’라는 테마로 오색 조명 600만개가 33만㎡ 규모의 수목원 곳곳을 밝히는 ‘오색별빛 정원전’이 열리고 있다. ‘고향집정원’과 ‘능수정원’에서 시작되는 오색별빛정원전은 나무 수형에 따라 빛으로 표현된 조명이 인상적이다. 다양한 자생 수종의 분재작품과 빛이 조화를 이뤄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분재정원’에서는 신비로운 보랏빛 향연이 펼쳐짐과 동시에 5m가 넘는 큰 단풍나무도 빛으로 태어나 웅장함이 느껴진다. 10개의 크고 작은 화단이 모여 있는 ‘하경정원’은 수목원 대표 정원답게 겨울에도 화려함을 뽐낸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아침광장은 넓은 잔디밭 위에 푸른 LED 조명이 연속적으로 펼쳐져 마치 푸른 바다를 보는 듯하다. 푸른 바다 위 돛단배와 한 쌍의 돌고래는 낭만을 더해주는 포인트다. 곡선의 길따라 빛이 스며든 하늘길에는 대형 꽃 모양, 호박마차, 말 등이 조성돼 있어 동화 속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색별빛정원전은 겨울철 볼거리가 부족한 수목원이 방문객 유치를 위한 아이디어로 2007년 12월 시작된 겨울 이색 빛축제다. 겨울철 가평의 새로운 볼거리로 전국의 관광객을 유인하고 있다. 기자를 안내한 수목원 기획홍보팀 조성만(32)씨는 “탄소 배출량이 적은 LED 전구를 사용하여 월동에 들어간 식물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했고, 자연의 색과 유사한 빛으로 정원을 밑그림 삼아 세심하게 구현했다. 외부 인력이 아닌 수목원 직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정원을 이해하고 가꾸는 이들이 표현하는 겨울정원으로서의 의미가 크다”며 “방문객이 낮에도 밤 못지않고, 물론 동남아나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3월 말까지 계속된다. 가족 밤마실로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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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취를 느끼게 하는 쁘띠프랑스 전경. |
◆이국적인 정취를 주는 쁘띠프랑스
가평 관광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쁘띠프랑스다. 청평호가 내려다보이는 청평면 고성리 산자락에는 동화 속 궁궐처럼 보인다. 한눈에 봐도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준다. ‘꽃과 별, 그리고 어린 왕자’라는 주제로 프랑스 남부 지방 전원마을 분위기를 재현한 테마파크다. ‘어린왕자’를 주제로 한 전시관과 생텍쥐페리기념관 등을 개관하고 전 단지를 어린왕자에 나오는 에피소드로 테마화했다. 프랑스 생텍쥐페리 재단으로부터 공식 라이선스까지 받았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관이 있다. 19세기에 지어진 프랑스 가옥을 그대로 옮겨와 다시 지은 ‘프랑스 전통주택 전시관’, 프랑스 벼룩시장 분위기를 재현한 ‘골동품 전시관’, 유럽의 인형 300여 점이 전시된 ‘유럽인형의 집’, 생텍쥐페리의 생애와 유품·유작을 볼 수 있는 ‘생텍쥐페리 기념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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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전통의 ‘기뇰 손인형극’ 체험 |
이곳에서도 이달 말까지 제5회 어린왕자 별빛축제가 열린다. 짙은 쪽빛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겨울 밤하늘 아래 프랑스 남부 도시 몽펠리에 거리를 모티브로 프랑스에서 직접 구입한 전구와 LED등을 사용해 연출된 조명은 프랑스 조명 특유의 포근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방문객에게 겨울밤의 낭만을 선사한다. 남프랑스 어느 도시의 거리를 거니는 듯한 생동감과 색다른 추억을 선사한다. 프랑스 전통의 ‘기뇰 손인형극 체험’, 그림도 그리고 기념품으로 간직하는 ‘어린왕자 석고아트’, 피노키오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는 ‘피노키오 이벤트’, 불어 오르골 시연, 피노키오 인형극 등 무료공연 또한 상시 다채롭게 펼쳐져 축제의 아늑함을 더한다.
◆새로운 음악명소 ‘음악역 1939’
가평에 간다고 하니 지인이 꼭 한번 들러보라며 추천한 곳이다. 가평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1만2000평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올해부터 정식 운영에 들어간 가평 뮤직빌리지는 비틀스가 녹음한 곳으로 알려진 영국 애비 로드 스튜디오를 설계한 세계적인 음향전문가 샘 도요시마가 설계했다고 한다. 공연장이 있는 뮤직센터 및 스튜디오, 연습동, 레지던스 등 음악 관련 4개 시설과 레스토랑, 로컬푸드매장, 숙박시설 등 편의시설을 옛 가평역 부지 3만7257㎡에 조성해 사계절 내내 음악축제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가평 뮤직빌리지 브랜드 네임인 ‘음악역 1939’는 1939년 7월 25일 교통과 관문으로 개통된 가평역의 역사성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된 음악 중심,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상징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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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 지하 1층 지상 3층 1만2000평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가평의 새로운 명소 부상하고 있다. |
현장에서 만난 ‘음악역 1939’의 송흥섭(64) 대표는“‘음악역 1939’는 음악성을 최우선에 두고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재즈앙상블 및 클래식 음악가들의 공연이나 오케스트라·솔리스트들의 연주회, 유명 아티스트의 단독공연, 신인 아티스트 오디션 프로젝트, 음악적 색채가 뚜렷한 레이블의 옴니버스 공연, 음악 관련 이벤트 등 연 70여 회의 공연을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음악 도시로서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알고보니 국내 손꼽히는 베이시스트였다. ‘사랑과 평화’ ‘석기시대’ 등 시대를 풍미한 그룹사운드를 거쳤고 가수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에 몸담기도 했다. 위대한 탄생 시절에는 싱어송라이터 유재하(1962~1987)를 팀의 건반 주자로 발탁해 그가 작곡한 ‘사랑하기 때문에’를 조용필 7집에 실리게 한 이가 바라 그다. “고향 가평이 전국적인 음악 명소가 될 수 있게 인생 2막의 신명을 다할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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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면 행정복지센터 창고 벽화. |
가평을 여행하다 설악면 일대에 들러보면 밝게 그린 벽화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설악면 행정복지센터 창고 벽면에 설악의 역사가 숨 쉬고 있다. 과거 500년 조선왕조의 도읍을 찾기 위해 설악면을 찾은 무학대사의 뒷모습에서 시작해 수상스키에 몸을 맡긴 청평호의 젊은이의 역동적인 모습, 북한강을 가로질러 설악면에서 가평을 향해 북한강에 놓인 가평대교까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재물과 명예로 대표되는 부엉이 5마리가 서로 다른 얼굴색을 하고 있는 벽화가 건너편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설악마을공동체 김경태 대표가 회원, 자원봉사자들과 지난해 그린 벽화들이다. 김 대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같이한 ‘꿈의 학교 벽화’사업이 계기가 되어 설악파출소를 시작으로 송산1리 마을회관, 가평경찰서, 신천2리 게이트볼장, 설악면생활체육공원, 소외계층의 주택, 미원초등학교, 방일초등학교, 미원초 위곡분교, 설악면행정복지센터 등 설악면 곳곳이 밝게 변해 새로운 구경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관광객 등 외지인이 벽화를 배경으로 기념촬영도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때마침 가평 오일장이 열렸다. 이곳에 사는 지인의 안내로 국밥 한 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장마당을 둘러봤다. 가평 잣, 더덕, 어묵, 노가리, 호떡, 때밀이타월, 내복, 방한모자 타월, 등걸이 등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시골장터 그대로다. 훈훈한 인심과 가벼운 흥정이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멀리 떠나기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가평은 힐링과 추억을 안겨주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스테디셀러 여행지로 평가받고 있다.
가평=글·사진=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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