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위치한 기업에 근무하는 A(50)씨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 당시 벌어졌던 일을 잊지 못한다. 주총 당일 주주를 자처하는 60대 남성이 은근히 A씨에게 금전을 요구했다.
A씨는 곧바로 거절했으나 그 남성은 주총 자리에 난입해 자신이 주주라는 근거로 큰 소리로 회의 안건에 ‘비토(반대)’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고의성이 다분했다.
해당 남성은 바로 ‘주총꾼’이었다. 주총꾼은 여러 회사의 주식 1∼10주를 구입한 뒤, 이를 근거로 회사를 돌면서 각종 편의나 금품을 요구한다. A씨가 금품 지급을 거절하자 곧바로 본색을 드러냈던 것.
‘주총꾼‘의 어깃장으로 회의 시간은 길어졌고, 10분이면 끝날 안건들도 몇 시간 동안 늘어지기도 했다.
A씨는 “뒤늦게 그 사람이 전문 주총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업계에서도 유명하더라”며 “주변에서 말하길 주총꾼에게 몇 십만원 쥐어주면 귀신같이 사라진다고 한다”고 말했다.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기업마다 ‘주총꾼’을 예방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다.
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들 ‘주총꾼’은 주로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 중 유명세가 덜하고 사측의 우호 주식이 적은 기업을 타깃으로 한다.
이들은 기업을 상대로 금품을 요구하고, 기업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의도적으로 주주총회 의사를 방해하면서 강짜를 부리는 것이다.
의결권은 주식수에 비례하지만 발언권은 주식수와 관계가 없는 주주총회 구조가 이같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이 주총 시즌에 기업들로부터 받아가는 액수는 건당 10만∼15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보니 몇몇 기업들은 직원을 동원해 주총꾼의 입장을 막는 등 다양한 예방책을 강구하고 있다.

지난해 한 금융권 대기업은 주총 시즌에 주총꾼을 막기 위해 신입사원을 동원해 회의장 자리를 미리 채워놓고, 소액주주들의 참석을 저지하기도 했다.
이에 소액주주들은 “이럴거면 도대체 주주총회를 왜 하냐”며 반발하면서 사원들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전자투표를 활성화 시키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주총 날짜가 몰리는 기간에 전자투표를 통해 주총 참여 비용을 낮추고, 빠른 의사 진행을 도모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대면 투표인 특성상 반대로 주총꾼이 더욱 활개를 칠 가능성도 있어 도입 여부를 두고 논란이 제기됐다.
한 기업 관계자는 “주총 때 연주자를 섭외해 클래식이나 국악을 연주하면 주총꾼의 방해가 덜하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차분한 음악이 흐르고 공연이 이뤄지고 있으면 (주총꾼의) 영향력이 덜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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