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은 문재인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의 하나다. 2년 전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뜻을 이루자는 것이다. 적폐청산은 개혁과 그 뜻을 같이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사회도 개선이나 개혁을 피할 수 없다. 이를 게을리하면 사회는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공산권에서 적폐청산의 문제가 생겼다.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방법이 적용된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이런 인물은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하기 힘들다. 나라에 따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스탈린은 소련에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마오쩌둥은 역사에 공을 세운 사람으로 남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스탈린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마오쩌둥은 위인이 됐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와 중국의 역사이고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주목할 것은 역사나 사람을 평가할 때 선악론(善惡論)과 공과론(功過論)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소련에서는 선악론이 적용된다. 1953년 스탈린이 죽자 그에 대한 평가가 시작된다. 흐루쇼프가 ‘개인숭배와 그 결과’라는 보고서에서 스탈린을 비난한다. 개인숭배, 영구집권, 살인, 고문, 투옥 등을 저지른 것으로 발표된다. 1956년 제20차 소련공산당 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미국의 모든 전문가는 예외 없이 히틀러의 소련 침략 ‘바르바로사’작전으로 소련이 3개월 내에 붕괴할 것으로 보았다. 예상을 뒤엎고 스탈린이 히틀러를 격퇴했다. 스탈린의 공적이다. 소련 지도부는 이 점은 생략했다. 흐루쇼프의 보고서를 전국에 배포하고 스탈린의 잘못을 널리 알린다. 스탈린의 공적과 과오 중에서 과오에만 집중했다. 선악론이 소련에서 통했다.
중국에서는 공과론이 적용된다. 1976년 마오쩌둥이 죽자 그의 개인숭배, 문화혁명, 인민공사 등 과오가 지적된다. 새로운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1981년 마오쩌둥을 평가한다. 마오쩌둥의 과오는 3할로 지적된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역사적인 대장정을 통해 중국을 통합하고 중국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마오쩌둥의 공적은 7할로 평가된다. 이른바 공칠과삼(功七過三)론이다. 결국 마오쩌둥은 중국에서 역사적 위인이 된다. 지도자로서의 공적과 과오, 양쪽을 모두 보자는 공과론이 중국에서 통했다.
중국의 공과론과 소련의 선악론은 막연한 선택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문화를 반영한다. 공과론은 음양론(陰陽論)이라는 철학에 기초해 있다. 진실과 거짓, 밝음과 어둠, 선(善)과 불선(不善) 등은 어디에서나 공존하는데 양쪽을 모두 보자는 철학이 중국의 음양론이다. 반면 선악론은 서양의 독특한 이분법에 기초해 있다. 진실과 거짓, 빛과 암흑, 선과 악 등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나눠 구분하자는 철학이 소련의 선악론이다. 이분법은 사람도 둘로 구분한다. 우리 편은 선하고 다른 편은 악하다. 이분적 진용 구분이 선악론에 따라다닌다.
선악론에서는 악을 폐기하면 선한 것은 저절로 이뤄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이분법의 함정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선악론으로 평가하고, 진정한 개혁이 없으면 잘못은 되풀이된다. 소련은 스탈린이 저지른 ‘악’을 비난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개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소위 ‘선’한 공산주의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이념에만 매달린 것이다. 30년 뒤 고르바초프가 뒤늦게 개혁을 시도했지만 소련은 패망했다. 덩샤오핑은 선악론이 아니라 공과론으로 마오쩌둥을 평가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과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개혁으로 답했다. 중국 국민이 화답했다. 중국의 공산주의는 ‘중국식 사회주의’가 되고, 중국은 미국과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다.
중국의 공과론과 소련의 선악론을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적폐청산의 답이 보인다. 진실한 적폐청산은 개인에 대한 선악적 판단, 즉 법에 의한 판단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폐라고 인식한 과오에 대해 너와 나 모두를 포함해 진정한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여기에 적폐청산의 답이 있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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