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단 하루 최고 선수들이 모여 열전을 펼치는 메이저리그(MLB) 올스타전은 스타들의 자존심이 충돌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끔은 승리를 위해 번트를 대곤 하는 홈런타자들도 이 경기만큼은 홈런 스윙을 하고, 투수들은 150km를 훌쩍 넘는 강속구를 던져대며 “이것이 나의 성공 방식이다”라고 팬들에게 외친다.
이는 10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2019 MLB 올스타전도 마찬가지여서 경기 시작과 함께 마운드에 오른 아메리칸리그(AL) 선발투수 저스틴 벌랜더(36·휴스턴)는 특유의 150km를 훌쩍 넘는 강속구를 3구 연속 던지며 내셔널리그(NL) 선두타자로 나선 지난해 NL MVP 크리스천 옐리치(28·밀워키)를 범타로 잡아냈다. 여기에 남은 두 타자를 상대로는 빠른 공의 구속을 160km 가까이 올리며 연속 삼진으로 메이저리그에 손꼽히는 특급투수에 걸맞는 관록을 만방에 과시했다. 이후 마운드에 오를 상대팀 투수가 기세에 눌릴만한 강력한 투구였다.
그러나, NL 선발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32·LA 다저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팀 동료 클레이턴 커쇼(31)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침착한 선수”라고 표현할 정도로 담대한 그는 생애 첫 올스타전 등판임에도 특유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라 시속 145km의 공을 AL 선두타자 조지 스프링어(30·휴스턴)의 인코스로 과감하게 찔러넣었다. 벌랜더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특유의 ‘칼날제구’가 가미된 날카로움이 살아있는 공으로 차근차근 상대타자를 공략해나갔다.다만, 스프링어와의 승부는 기분좋게 끝나지는 않았다. 2구로 145km의 빠른 볼을 던져 땅볼을 유도했지만 빗맞은 타구가 불운하게도 2루수를 스치며 안타가 됐다.
기념비적인 첫 올스타전의 첫 상대 타자에게 기분나쁜 안타를 내줬지만 류현진은 자신의 방식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벌랜더가 강속구를 던지며 자신의 방식을 보여줬듯 특유의 칼제구로 세 타자를 연이어 잡아낸 것. AL 타율 1위 2번 타자 DJ 르메이유(31·뉴욕 양키스)는 전매특허인 체인지업을 던져 투수 앞 땅볼로 요리했고, 현역 MLB 최고 타자로 꼽히는 3번 마이크 트라우트(28·LA 에인절스)는 몸쪽에 낮게 떨어지는 컷 패스트볼로 2루수 앞 땅볼로 처리했다. 여기에 4번타자 카를로스 산타나(33·클리블랜드)도 유격수앞 땅볼로 돌려세우고 실점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네 타자 모두를 땅볼로 유도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완벽히 보여준 류현진은 만족한 듯 살짝 미소를 보이며 1이닝으로 예정된 투구를 마감했다.
이날 경기는 AL이 2회 나온 마이클 브랜틀리(32·휴스턴)의 선제 2루타 타점과 7회 터진 조이 갈로(26·텍사스)의 홈런 등으로 NL에 4-3으로 승리하며 올스타전 7연승을 이어갔다.
투수 보호를 중요시하는 최근 추세에 따라 모든 투수는 최대 1이닝 이상 투구를 하지 않았고, 선발투수인 류현진과 벌랜더 외에도 워커 뷸러(25·LA 다저스), 마이크 소로카(22·애틀랜타), 아롤디스 채프먼(31·뉴욕 양키즈) 올시즌을 빛내고 있는 특급 투수들이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투구를 끝냈다. 이중 홈구장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5회말 등판해 세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셰인 비버(24·클리블랜드)는 MVP의 영광을 안았다. 비록 MVP는 놓쳤지만 류현진도 특유의 기교파 투구를 강타자들 상대로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류현진 스스로도 이날 등판에 큰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등판을 마친 뒤 “세타자로 끝났으면 했는데 빗맞은 타구가 나와 첫 타자를 내보내 아쉬웠다”면서도 “공 개수도 많지 않았고, 모든 타자를 땅볼로 유도했다. 한 회를 깔끔하게 막아 만족한다”면서 활짝 웃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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