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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백색테러에서 '용팔이'와 '유지광' 모습이...깡패 그리고 [박태훈의 스토리뉴스]

입력 : 2019-07-24 06:00:00 수정 : 2019-07-23 20: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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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토리뉴스] 흰옷 입은 괴한들, 홍콩 ‘반중시위대’ 무차별 폭행 / 경찰 늑장출동에 "고맙다"며 폭력배 격려까지 / 악명높은 중국 최대폭력조직 ‘삼합회’ 소행 추정 / 정치깡패 유지광의 1957년 장충단 유세 난동, 1960년 ‘고려대 데모학생 피습사건’ / 1987년 4월 깡패 ‘용팔이’의 창당방해 사건과 유사 / 이들 깡패 뒤엔 국가권력이

홍콩의 백색테러(왼쪽)가 60여년 전 한국의 유지광(오른쪽)과 40여년 전 용팔이를 불러냈다. 홍콩 백색테러는 지난 21일 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를 펼치던 시민들에게 흰 상의차림의 괴한 100여명이 쇠파이프 등을 휘두른 사건을 말한다. 

 

홍콩 시민들과 언론은 백색테러에 가담한 괴한 중 상당수가 중국 최대폭력조직인 삼합회(三合會)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증명하듯 22일 홍콩 경찰이 체포한 폭력 용의자 6명 중에는 삼합회 파벌인 ‘허성허(和勝和)’ 출신 전직 조폭이 끼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백색테러, 유지광, 용팔이 모두 국가권력 조종에 따라 무고한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떳떳치 못한 일을 처리해 줄 누군가를 원했던 권력과 돈과 뒤를 봐줄 배경이 필요했던 폭력배가 손을 맞잡은 '악의 조합'이었다.     

 

◆ 백색테러에 홍콩 시민 45명 부상...경찰간부 "고맙다"며 테러단 격려, 늦장 출동

 

21일 저녁 홍콩 시민들은 홍콩 서북쪽에 위치한 위안랑((元朗) 전철역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를 펼쳤다. 시위가 끝날 무렵이던 밤 10시쯤 흰 상의로 통일한 100여명의 괴한이 각목과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돌진, 해산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 만삭의 임신부 등 최소 45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중상자 5명 중 1명은 위중한 상태로 전해졌다. 

 

이들은 밤 11시쯤 경찰이 늑장 출동하자 슬며시 자리를 피했지만 경찰이 사라지자 다시 나타나 이튿날 오전 1시까지 전철역 일대를 돌아다니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23일 밍보, 빈과일보 등 홍콩 언론들은 "백색테러단이 21일 오후 7시부터 역 주변에 집결하기 시작했으며 경찰은 폭행 신고를 받고도 35분이나 늦게 출동한 데다 체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며 조폭과 경찰의 유착을 의심했다. 

 

또 "홍콩 경찰과 흰옷을 입은 남성들이 대화하는 장면(왼쪽)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 널리 유포되고 있다"면서 "이 영상에서 흰옷을 입은 한 남성이 경찰 지휘관에게 '경찰이 이들을 쫓아낼 수 없다면 우리가 대신 도와주겠다"고 말하자 '고맙다.  도움 덕분에 우리가 힘들지 않게 됐다'며 경찰 지휘자가 남성의 어깨를 두드리는 장면이 노출됐다"고 보도했다. 

 

◆ 홍콩 경찰책임자 "삼합회와 관계없다", 행정장관 "폭행 가담자 전원 체포" 지시

 

홍콩 정부가 반대시위 해산에 삼합회를 동원했다는 의혹이 퍼지자 홍콩 경찰 책임자인 스테판 로 경무처장은 '삼합회와 유착'을 강력 부인했다. 또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폭력 가담자 전원을 체포하라"고 경찰에 지시, 의혹 차단에 나섰다.

 

폭력가담자 체포에 나선 홍콩 경찰은 확보한 동영상을 분석한 끝에 용의자 10명을 특정, 그 중 6명을 우선 붙잡았다. 체포된 이들은 24~54세사이 남성들로 이들 중에는 삼합회 파벌 중 하나이자 홍콩 최대 폭력조직인 ‘허성허(和勝和·WSW)’ 출신도 있다는 것이 홍콩 언론 설명이다.

 

◆ 정치깡패 유지광, '화랑동지회' 이끌며 장충단 유세 방해· 고려대 데모대 습격 

 

우리나라 정치깡패 원조는 자유당 시절 ‘동대문 사단’의 보스 이정재와 행동대장 유지광이다. 

 

유지광은 정치깡패 조직인 '화랑동지회'를 결성, 이승만과 자유당을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 학생 등을 겁박했다. 그 중 대표적인 일이 1957년 5월25일 서울 장충단공원 야당유세장 난동과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데모대 피습사건이다.

 

1957년 5월25일 장충단 공원에선 민주당과 무소속 정치인들이 자유당 규탄 시국강연회를 열었다. 이때 유지광은 화랑동지회 깡패들을 동원해 유세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 일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자유당은 마지 못해 유지광을 잡아 넣었고 징역 8개월을 선고받은 유지광은 편안히 교도소 생활을 했다.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은 '3·15 부정선거' 규탄, 자유당 정권 타도를 외치며 안암동 교정을 벗어나 종로까지 진출했다. 고려대 학생들이 유진오 총장의 설득에 따라 그날 밤 해산을 위해 을지로에서 청계천으로 이동했다. 이때 유지광(왼쪽)이 이끈 깡패들이 각목과 쇠파이크, 체인 등을 마구 휘두르며 학생들을 급습했다. 

 

쓰러진 고려대 학생들 모습이 4월 19일 아침 신문에 실렸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유지광은 4· 19 혁명 뒤 체포 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5·16쿠데타로 재구속돼 사형→무기징역→징역 15년형으로 감형된 끝에 5년6개월여 뒤 석방됐다.

 

반면 이정재는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거대 야당 탄생 막기위해 안기부가 사주한 1987년 '용팔이 사건'

 

유명한 정치깡패 사건 중 하나가 바로 1987년 4월20일에서 24일까지 벌어졌던 '용팔이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정통 야당이었던 신한민주당 주류(이민우 총재, 이철승)가 내각제 개헌안에 지지의사를 밝히자 김영삼, 김대중이 70여명의 의원들을 이끌고 탈당했다. 이어 통일민주당 창당 작업에 들어간 이들은 중앙당 창단에 앞서 1987년 4월 지구당별 창당대회를 가졌다.

 

이를 방해하기 위해 4월 20일부터 4월 24일까지 조폭들이 통일민주당 20여개 지구당에 들이닥쳐 기물을 부수고 당원들을 폭행했다. 통일민주당은 지구당사가 아닌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지구당 출범식을 하는 등 애를 먹었다.

 

이 사건을 주도한 인물 중 한명이 전주파 조폭을 지휘했던 '김용남(왼쪽)'으로 이후 '용팔이 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김용남은 사건 발생 1년 5개월 뒤인 1988년 9월 검거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나중에 집권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1993년 재조사에 들어간 결과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이 강력한 야당 출현을 막으려고 일부 야당 의원에게 자금을 지원해 꾸민 일로 드러났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연합뉴스· AP 뉴시스·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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