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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직장상사… "은밀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어떻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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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27 12:00:00 수정 : 2019-07-27 02: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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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를 육식동물 사이에 불행하게 갇힌 ‘초식동물’이라 표현하는 5년차 직장인 이영민(29·가명)씨.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 충동에 시달린다. 극도로 경쟁적인 부서분위기, 자신의 평판을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씨의 실적을 가로채려는 부서원들 사이에 치이느라 몸도 마음도 망가진 지 오래다. 보고서 작성을 도와달라는 직속 선배의 요청에 하루 종일 동분서주 하며 자료를 정리해서 넘겨도 실적을 통째로 가로채이기 일쑤. 끝이 없는 직속 선배의 위선과 이기심은 그를 무기력증 상태로 몰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없는 말까지 지어내며 그를 ‘무능력자’로 낙인찍기 위해 험담을 일삼는 부원, 사사건건 트집 잡으며 훼방을 놓는 선배 등의 괴롭힘으로 원인불명의 ‘거식증’까지 걸렸다. 하지만 동료에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위반으로 노동청에 신고하고 싶다는 속내를 어렵게 털어놓자 “권리는 얻겠지만,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조언이 돌아왔다. 괴롭힘이 은밀하게 진행 된데다 증거로 내세울 만한 게 마땅치 않다는 것도 문제였다.

 

지난 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됐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본 업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꺼리는 힘든 업무를 하도록 강요하거나, 업무 외의 대화나 친목 모임에서 제외하는 등의 행위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하지만 예외를 적용받는 대상자들이 많은데다, 모호한 처벌 요건 등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보복을 우려해 신고를 철회하는 사례들도 빈발하는 실정이다.

 

26일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법 시행 전 하루 평균 50~60건 정도였던 신고건수는 법 시행 후 110건으로 2배 정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도 25일까지 총 108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고사례 중 상당수가 정규직 상사가 파견직·용역직·특수고용직 등과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행하는 경우로 처벌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파견법 등에 따르면 사용사업주와 그 소속노동자와 파견노동자 간 직장 내 괴롭힘은 인정되는 반면 원청 노동자가 하청 노동자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려도 규제할 방법이 마땅히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원청 사업주는 소속 노동자가 누구를 상대로 행위 했는지를 불문하고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취업규칙이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대체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속하는 5인 미만 사업장도 제외된다. 애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선 5인 미만 사업장은 해당 사항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어 불합리한 조치를 당하더라도 특별히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무엇보다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닌 공무원은 괴롭힘 방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각지대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국가공무원·지방공무원·교사·교직원 등 모든 공무원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복무규정을 적용받지만 복무규정에는 공무원의 근무시간, 휴가, 정치적 중립성 등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같이 갑질 행위를 막을 만한 근거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거나 감사원, 감사위원회 등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간부 공무원이 부당 업무지시 또는 갑질을 하더라도 사실상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에 국회 보좌관들의 페이스북 계정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도 각종 ‘괴롭힘 실태’를 성토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A씨는 “의원 보좌진은 국가공무원이다. 그러나 정작 영감(국회의원)들은 보좌진을 공무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노비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하루 평균 40건 정도에 달할 정도로 직장 내 괴롭힘 제보가 많은데,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까지 해당 법이 적용되기 위해선 별도 하위 법령 개정이 필요한 점과 가해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는 점은 한계”라며 “정부가 법 개선을 위한 검토를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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