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일본 문화의 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물을 담은 책이 1946년 발간한 ‘국화와 칼’이다. 지금도 일본 연구의 입문서 역할을 한다. 베네딕트는 첫머리에서 “일본인은 미국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었다”고 했다.
“대국(大國)을 적으로 하는 전쟁에서 이처럼 현격히 이질적인 행동과 사상의 습관을 고려해야 할 필연성에 직면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 일본인은 서양 여러 나라가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전시관례(戰時慣例)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베네딕트가 보기에 일본은 모순투성이였다. 일본인은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국화를 가꾸는 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졌지만,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린다. 그는 “칼도 국화도 한 그림의 일부분”이라고 했다.
“일본인은 최고도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성이 풍부하며, 유순하면서도 귀찮게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며,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그는 “일본인이 사용하는 범주와 상징에 관해 조금만 이해한다면 흔히 서양인의 눈에 비친 일본인의 많은 행동적 모순은 이미 모순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어찌하여 일본인 자신은 어떤 종류의 급격한 행동 전환을 일관된 하나의 체계의 뗄 수 없는 부분으로 간주하는가를 나는 알게 되었다”고 했다.
“덕과 악덕은 서양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체계는 전혀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은 불교적인 것도 아니고 유교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적인 것이었다.”
베네딕트는 일본이 전쟁의 원인을 보는 시각이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전제가 미국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은 일본·이탈리아·독일 등 추축국의 침략 행위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본 반면에 일본은 계층 제도(hierarchy) 수립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된다. 일본은 계층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세계 각국이 국제적 계층 제도 안에서 각기 알맞은 위치를 찾아야 하며, 그 결과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베네딕트는 이를 “계층 제도에 대한 신앙과 신뢰”라고 했다.
“계층 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야말로 인간 상호 관계 및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베네딕트는 그 사례로 1940년 일본이 독일·이탈리아와 체결한 3국동맹 조약 전문의 한 구절을 제시한다. “대일본 제국 정부, 독일 정부 및 이탈리아 정부는, 세계 만방이 각기의 알맞은 위치를 갖는 것이 항구적 평화의 선결 요건이라고 인정하므로….” 이 조약 조인에 따라 내려진 조서에도 같은 내용을 담았다. “각국이 알맞은 위치를 찾는 것, 만민이 안전과 평화 속에 살기 위한 과업은 가장 위대한 대업이다.” 진주만 공격 당일 일본 사절단이 코델 헐 미 국무장관에게 전한 선전포고문에서도 이에 관한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국가가 세계 속에서 각기 알맞은 위치를 갖게 하는 데 대한 일본 정부의 정책은 불변이다.” 일본이 알맞은 위치를 갖겠다는 것이 미국과 전쟁을 벌인 근본적인 이유다.
다른 나라에서는 빈번히 왕조가 교체되었지만 일본에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계층 제도에 대한 뿌리깊은 신뢰 탓에 왕조 교체를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통치자’인 천황에 대한 숭배는 이를 배경으로 한다. 베네딕트는 “그들은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도덕 체계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며 “그것은 틀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인 것”이라고 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이 한국에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국제사회 계층 제도에 대한 일본의 인식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 정권은 제국주의 시절에 식민통치를 했던 나라가 오늘날 국제사회의 주요 국가로 급부상한 탓에 심사가 불편한 듯하다. 국가와 세계에 대한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법이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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