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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떡먹기’ 그런 뜻이 아니었거늘…

입력 : 2019-08-17 01:00:00 수정 : 2019-08-16 20: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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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뜻은 음식을 누워 먹을만큼 게으른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니라! / ‘식은죽 먹기’도 남의 말 쉽게하지 말라는 경고 / 정조 때 청장관 이덕무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며 채록 / 잘못 알고 있던 전통속담 99편의 본뜻 친절히 설명
엄윤숙/사유와기록/1만4500원

이덕무의 열상방언 - 우리가 몰랐던 속담 이야기/엄윤숙/사유와기록/1만4500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남자가 계속 꼬시면 여자는 넘어 온다든지, 계속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의미로 쓰이곤 한다. 그러나 전혀 다른 뜻이다. ‘천 사람이 쳐다보면 병이 없어도 저절로 죽는다’라는 옛말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그러니까 그런 못된 짓 하지 말라는 것, 계속 찍으면 나무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스토커를 옹호하는 말로 쓰인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조선 정조시대 청장관 이덕무.

18세기 후기 유학자 청장관 이덕무(1741∼1793)는 이 속담의 뜻을 해설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입방아가 사람을 병들게 하고 힘들게 한다고 해설했다. 이런 속담을 주고받으며 여성을 차지하는 비법인 양 그 비열함을 전수할 일이 아니다. 사람을 함부로 쳐다보고 수군대며 평가하는 것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이덕무는 당시 한강에 나가 서민들과 담소하면서 속담을 채록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 고래의 속담이 언제부터 어떻게 유래되어 오늘날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쉽다 거나 정말 쉽다는 뜻으로 쓰고 있는 ‘누워서 떡 먹기’란 말도, 잘못 쓰이는 대표적인 말이다. 애초 이 속담은 ‘누워서 떡을 먹으면 콩고물이 떨어진다’이다. 떡을 누워서 먹다가 얼굴을 더럽히고 게을러진다는 의미이지, 뭔가 얻어먹을게 있다는 뜻이 아니다. 말의 반만 쓰이고 있으니 반대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누워서 떡 먹기’와 ‘콩고물이 떨어진다’로 분리 되면서 뜻이 변했다. 작은 이익을 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콩고물이 떨어져 나를 더럽힌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이 속담을 반쪽씩 따로 쓰면서 전혀 다른 뜻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남 말하기란 식은 죽 먹기다’란 말도 반만 쓰이면서 엉뚱한 뜻으로 변한 경우다. 금방 만든 죽은 매우 뜨겁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빨리 먹을 수 없다. 반면 적당히 식은 죽을 먹기는 아주 쉽다. 떠먹을 필요도 없이 후루룩 마시면 된다. 이 속담은 원래 남에 대해 말을 쉽게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아무런 어려움도 아픔도 거리낌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남 말하기’라는 표현을 떼어놓고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다’는 의미로만 쓰인다. ‘쉽다’는 것은 그렇게 되기가 쉽다는 말,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피해가야 할 경계의 말이다. 식은 죽을 쉽게 먹지 않는 게 진짜 능력이다. 반쪽만 전해지고 있으니 반대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영·정조 연간 뛰어난 유학자였던 이덕무가 당시 서울·경기 지역에서 널리 쓰이던 속담을 채록하여 엮은 속담집이다. 청장관전서 62권에 실려 있다.  이덕무는 총 99편의 속담을 모아, 매 편마다 6글자 한자로 압축한 뒤 친절하게 그 뜻을 설명해 놓았다. 이를테면 ‘이불 보고 발 뻗는다’는 속담의 경우, ‘양오피 치오지(量吾彼 置吾趾)’라고 한자어로 정리하고, “무슨 일이든 자신의 힘을 헤아려서 해야 한다. 이불은 짧은데 발을 뻗으면, 발이 반드시 이불 밖으로 나와 고달파질 것이다”라고 해설을 붙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 역시 우리나라 속담을 정리한 ‘백언해’를 쓰고 스스로 발문을 붙혔다. 그는 ‘백언해발(百諺解跋)’에서 “속담은 속된 말이다. 아낙네나 어린아이의 입에서 만들어져 항간에 유행되고 있으나, 인정을 살피고 사리를 검증함으로써 뼛속 깊이 들어가 털끝처럼 미세한 부분까지 밝혀내는 점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처럼 널리 유포되어 없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우리 옛말을 정리하고 고증해 온 저자 엄윤숙은 이익의 말을 이렇게 풀이했다. “속담 속에는 인문학이 숨어있다. 인문학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고민과 질문에서 시작된다. 인문학은 나와 내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해 보는 것이고, 흔들리고 머뭇거리는 내 마음속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사유와기록연구소’ 대표인 엄윤숙은 우리 고전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고전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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