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외에 술로 만드는 과일은 뭐가 있을까? 서유럽의 경우 포도 다음으로 사과를 술로 많이 만들어먹곤 한다. 뜨거운 태양빛이 있어야 하는 포도와 달리 사과는 연평균 섭씨 8∼11도 정도의 서늘한 곳에서 잘 자란다. 따라서 지중해와 멀리 떨어진 대서양기후의 스페인 서북부와 북유럽에 가까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에서 사과술을 많이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과술의 이름이다. 스페인은 시드라(Sidra), 프랑스는 시드르(cidre), 그리고 영국으로 가서 사이더(Cider)가 되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청량음료 사이다의 어원이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이 시드르를 증류한 세계적인 사과 브랜디가 있다. 오크통에 2년 이상 숙성해야 하며, 서양 배도 원료로 사용하는 이 술의 이름은 칼바도스(Calvados). 노르망디 칼바도스 지역 이름을 따 붙여진 이름이다. 색과 디자인을 본다면 마치 사과로 만든 위스키와 같은 느낌이랄까? 이 칼바도스 중에서 신기한 제품을 하나 발견했다. 병 속에 사과가 들어있는 제품이었다. 제품명은 ‘라 폼 프리조니에(La Pomme Prisonniere)’. 프랑스어로 ‘갇힌 사과’라는 의미다.

병 입구가 좁은데 어떻게 이 큼지막한 사과가 들어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과를 작게 자른 뒤 다시 붙였을까? 아니면 병을 반으로 쪼갠 뒤 사과를 넣은 것인가? 둘 다 틀렸다. 사과는 다시 붙인 자국 하나 없으며, 반으로 쪼갠 병을 다시 붙이기에는 열기가 너무 강해 사과색이 남을 수가 없다. 도대체 그럼, 어떻게 이 큰 사과를 병 속에 넣었단 말인가?
큼지막한 사과를 병 속에 넣은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사과가 큼지막하기 전에, 즉 아직 어린 상태의 사과를 병 속에 넣는 것이다. 그리고 줄기를 자르지 않고 병 속에서 머물게 한다. 즉, 병 속에서 사과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병이 무거워 성장을 방해하지 않게 살짝 높은 가지에 끈으로 매달아 놓는다. 그리고 9월 수확 시즌이 되면 정성스럽게 사과를 따준 뒤 칼바도스를 넣어주면 작업은 마무리가 된다.
사과는 들어있지 않지만 한국에도 훌륭한 사과 증류주, 즉 한국판 칼바도스를 만드는 곳이 있다. 충남 사과 생산 1위인 예산의 ‘예산사과 와이너리’와 전국 사과 생산량 3위를 자랑하는 문경의 ‘오미나라’다. ‘추사애플브랜디’와 ‘문경바람’이라는 이름의 이 증류주는 모두 지역의 사과로 술을 만든 뒤 증류해 오크통에 숙성을 하는데, 사과의 산뜻한 맛과 오크통 숙성 특유의 바닐라, 초콜릿, 아몬드 향이 함께 따라온다. 와인 및 위스키 전문가도 이곳 제품만큼은 높이 평가한다.
참고로 이러한 사과 증류주 1L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과 한 박스 이상이 들어간다. 샷잔으로 마신다고 해도 사과 하나씩은 들어있는 셈이다. 술 한 잔으로 예산과 문경의 사과를 느낄 수 있다. 좋은 증류주의 매력은 농산물의 풍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