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남미 칠레에서 말기 간경화와 간암 진단을 받아 삶을 정리하려 했던 60대 가장이 한국서 두 딸의 간을 이식받고 건강한 삶을 되찾았다.
7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칠레에서 토목 기사로 일하던 알베르토(62)씨는 지난해 9월 극심한 피로와 황달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말기 간경화와 간암 진단을 받았다. 혈전으로 간문맥이 완전히 막힌 데다 이미 담도에도 간암이 침범한 상태여서 의료진은 요양병원에서 삶을 정리하도록 안내했고, 이를 받아들이려 했다. 낙담하던 그때 서울아산병원에서 2차례 간이식 연수를 받았던 에콰도르 출신의 간이식외과 의사 라울 오레아스(50)씨를 만나면서 그는 삶에 대한 희망을 다시 품게 됐다. 세계 최고의 간이식 성공률을 보이는 한국을 찾아가 간이식 수술을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은 것이다. 라울 오레아스는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알베르토씨의 치료를 의뢰하는 메일도 보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알베르토씨의 간이식 수술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가 키 182㎝에 몸무게 92㎏의 큰 체격이어서 1대1 생체간이식으로는 기증할 수 있는 간의 크기가 작아 간이식 수술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뇌사자 간이식도 간암의 광범위한 담도 침범과 문맥 폐색에 따른 기술적인 문제로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진에게 유일한 대안은 2명의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각각 간 일부를 받아 시행하는 2대1 생체간이식 수술뿐이었다.
현재 전 세계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의 95% 이상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알베르토씨의 진료 기록과 영상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의료진은 다행히도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이 가능한 것으로 판정했고, 그는 지난 3월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아 조직 적합성이 맞는 첫딸과 막내딸의 간을 성공적으로 이식받았다.
김기훈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는 “암이 침범한 담도와 폐쇄된 간문맥 전체를 제거하고 두 딸의 간을 연결하는 수술이 어려웠고, 이식 후에도 간 기능이 예상만큼 빨리 회복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마취통증의학과, 중환자간호팀, 병동 간호팀, 감염내과팀 등이 함께 노력한 끝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지구 반대편의 나라 칠레에서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가까운 미국에 가지 않고 한국을 찾아온 것은 우리나라 간이식 수준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귀국을 앞둔 알베르토씨는 “일상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의료진이 평생 나와 가족에게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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