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의 인문학/정혜경/따비/1만7000원
30년 넘게 한국인의 음식 문화를 연구해온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가 한식 중심의 밥을 다룬 ‘밥의 인문학’, 한국인의 생명줄로 여겨지는 나물을 다룬 ‘채소 인문학’에 이어 이번엔 ‘고기 인문학’을 펴냈다. 미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끊을 수 없는 고기의 매력이 만든 한국인의 고기에 관한 역사와 문화, 과학에 관한 이야기다. 미안하다고 한 것은 고기를 먹으려면 필연적으로 생명을 해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불안한 것은 육식이 야기하는 각종 성인병에 대한 현대인의 공포 탓이다.
우리는 고기를 ‘잘’ 먹고 있을까. 저자는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선사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고기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울산 남구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인들의 무엇을 염원했는지를 보여준다. 고래와 사슴 등 바다와 육지의 동물 그림과 사냥하는 장면들이 묘사된 암각화는 선사인들이 바다와 육지의 동물을 사냥해 먹었음을 보여준다. 바위 표면에 동물 그림은 선사인들의 생존에 대한 열망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부족국가 시대에 오면 동물을 사육하게 된다. ‘삼국지’ 부여전에 나오는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 견사(犬使)라는 벼슬 이름은 당시 사육 동물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당시 말, 소, 돼지, 개는 고기와 가죽, 기름, 여기에다 노동과 이동의 편의까지 인간에게 제공하는 귀한 자산으로 공동체 차원에서 관리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고구려의 안악 3호분 벽화에는 외양간과 마구간뿐 아니라 고기를 보관하는 저장고도 그려져 있다. 여러 고기를 갈고리에 꿰어 걸어놓은 이 저장고는 귀족이란 고기를 넉넉히 먹을 수 있는 계급이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고려와 조선은 각기 다른 이유로 소의 도축을 금지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는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기 위한 우금령이 여러 차례 반포됐다.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인들의 고기 다루는 기술이 형편없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고려 말기에 가면 원나라의 영향으로 육식이 널리 확산했다. 유교국가 조선이 우금령을 계속 반포한 까닭은 육식을 금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경을 장려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고려 말기부터 고기 맛을 알게 된 백성들을 제어하지 않으면 농사지을 소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조선 후기에 가축은 매매의 대상이 됐다. 집에서 기른 닭과 돼지, 개를 팔러 시장에 나온 민초들의 모습을 김준근의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삼엄한 우금령을 비집고 조선 사람들은 여러 고기 음식을 해 먹었다. 귀한 쇠고기를 굽고 삶고 끓였다. 살코기뿐 아니라 위와 간, 골 같은 내장도 지져 먹고 데쳐 먹었다. 뼈와 피(선지)조차 버리지 않고 국으로 끓이고 순대로 삶았고, 우족과 껍질의 콜라겐으로 족편, 전약 같은 기발하면서도 보양식도 만들었다. 이 쇠고기 편애는 일제가 정책적으로 돼지고기 사육을 권장할 때까지 계속됐고, 돼지 사육의 기술이 발달해 양념하지 않고 구워 먹을 수 있게 된 1970년대 후반에는 삼겹살구이가 ‘국민 외식’으로까지 등극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경제성장에 힘입어 국민은 유례 없이 풍요롭게 고기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하나 마음껏 고기를 즐길수 있는 현대인들은 새로운 걱정거리를 안게 됐다. 비만, 당뇨병, 각종 심혈관계 질환 등 만성질환의 주범으로 고기가 지목되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는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우려를 담은 건강법도 확산하게 된다. 저자는 이와 관련, “한국인의 평균적인 육류 섭취 수준은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여러 성인병의 원인은 고기의 지방보다는 간식으로 무심코 섭취하는 탄수화물(당)일 수 있음을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성장기 어린이, 임산부, 각종 질환을 앓고 있거나 회복 중인 환자, 노인은 질 좋은 단백질, 즉 고기의 섭취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기 단백질의 충분한 섭취는 여전히 생활 수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성장기 어린이에게는 체중 1kg당 단백질 요구량이 성인의 2배다. 저소득층 어린이에게서 나타나는 단백질 섭취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저자는 책을 통해 결론적으로 건강을 위해서도, 동물복지를 위해서도, 지구 환경의 보전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적당히’, ‘제대로’ 고기를 즐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