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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갓(冠)처럼 생긴 바위산(岳)이다. 갓산 아래에 볕이 드는 동네는 안양 관양동이다. 그곳에서 관악산을 오르면 소나무 숲길이 다하는 곳에 우뚝 솟은 바위가 있다. 누군가 이름을 붙여 놓았다. 경명(鏡明). ‘거울이 맑다’는 뜻이다. 비에 씻기고 햇볕에 바래어 글자를 이젠 잘 알아볼 수 없다. 아침마다 그곳에 오르는 친구가 말했다. “효명(曉明·아침이 밝는다)”이라고. 경명이든, 효명이든 그 바위는 마음을 맑게 한다.

진달래꽃이 만개한 어느 봄날. 아들이 파라솔 의자처럼 생긴, 짊어지는 의자에 노모를 올려 앉혀 그 바위 아래에 왔다. 어머니는 80대 후반이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바위 주변을 돈 뒤 아들이 말했다. “여기서 쉬실래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수줍은 분홍빛을 발하는 진달래꽃 아래에 앉았다. 왜 그곳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온 걸까. 더 이상 산에 오를 수 없는 늙어버린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산천경개를 꼭 보여드리고 싶었을까. 그 기억은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영화처럼 되살아난다.

반포지효(反哺之孝). 60일 동안 새끼를 먹이는 어미 까마귀. 늙고 지쳐 어미가 먹이를 구하지 못하면 다 자란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그런 까마귀를 자오(慈烏)·반포조(反哺鳥)라고 한다.

그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말 새벽 대구 수성구 경찰지구대에 팔순 노모를 데려온 딸,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어머니를 돌봐줄 수 없나요.”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 동생이 어머니를 맡겼는데, 정신병에 집안도 어려워 도저히 맡을 수 없다”고 했다. 바람을 쐬겠다며 나간 딸은 돌아오지 않았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는 되뇌었다. “자식들은 잘하고 있어. 곧 돌아올 거야.”

가난과 세파에 쪼들린 딸의 심정은 어땠을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지구대 전등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지 않았을까. 버림받은 어머니는 원망을 했을까. 혹시 이런 기도를 올리지 않았을까. “나의 시간이 다했으니 아들딸의 시간을 활짝 열어 달라”고. 노모의 몇 마디에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이름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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