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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아리서 첫 영화 연출 … ‘한국형 블록버스터’ 개척 [봉준호가 걸어온 길·작품세계]

입력 : 2020-02-10 19:06:12 수정 : 2020-02-10 22: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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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백색인’으로 시작해 / 31세에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 / 특유의 유머로 사회문제 묘사 / 디테일 강한 연출력 주목받아 / ‘괴물’서 국가 비판의식 드러내 / MB·朴 정권 ‘블랙리스트’ 등재 / 봉 감독 “악몽같은 몇년이었다” / 숱한 부침 속 꾸준히 저력 쌓아

연세대 영화동아리 ‘노란문’에서 단편영화 ‘백색인(1993)’ 연출로 영화인생을 시작한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 101년 역사에 첫 오스카상을, 그것도 4개나 안겨줬다. 10일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신의 7번째 장편영화인 ‘기생충’으로 국제장편영화상은 물론 가장 중요한 각본·감독·작품상을 거머쥔 봉준호는 숱한 부침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저력을 쌓아온 충무로가 배출한 세계적 영화 거장이 됐다.

 

◆거장 반열에 오른 봉준호는 누구

 

1969년 대구 출생인 봉준호의 선친은 고 봉상균 전 영남대 미대 교수. 봉준호는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을 지낸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선친 서재에서 영화, 건축, 디자인 관련 다양한 책을 읽으며 자랐다고 한다. 봉준호의 어머니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구보 박태원의 둘째 딸 박소영이며 형인 봉준수는 서울대 영문과 교수, 누나인 봉지희는 패션디자이너이자 국제문화협회 이사이다.

봉준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잠실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낸 뒤 연세대 사회학과에 88학번으로 입학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노란문’을 만들어 영화를 시작한 봉준호는 허진호·임상수·김태용 감독 등을 배출하며 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만든 한국영화아카데미에 11기로 입학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봉준호는 1999년까지 충무로에서 조연출과 각본 등의 활동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 졸업작품 ‘지리멸렬(1994)’은 사회 병폐를 유머러스하게 꼬집는 블랙코미디로 주목받았다. 이를 통해 지금은 싸이더스가 된 우노필름 차승재 대표가 재능을 알아본 덕분에 봉준호는 비교적 빠른 31세 나이에 ‘플란다스의 개(2000)’로 장편영화 데뷔를 했다. 역시 지금은 세계적 배우가 된 배두나가 노란 비옷을 입고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영화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봉준호’ 영화세계의 출발점이 된다.

 

◆봉준호 작품 세계는

 

흥행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건 ‘살인의 추억(2003)’부터다. 봉준호 영화세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송강호가 ‘막가파’식 시골 형사로 처음 등장하는 이 영화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뤘다. 전국 525만명을 동원했는데 디테일에 강한 봉 감독 연출력 덕분에 ‘웰메이드 영화’라는 단어가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2006년 선보인 ‘괴물’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탄생의 신호탄이 된 작품이다. 한강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송강호 등 한 가족이 한강에 출몰하는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괴물의 기원은 미군 실험실이며 시민을 지켜야 할 국가는 제 기능을 못 하는 대목에서 봉준호의 비판의식이 드러난다. ‘괴물’의 뒤를 잇는 봉준호 작품은 ‘마더(2009)’. 국민 어머니 김혜자의 연기 변신이 놀라운 심리스릴러로, 인간의 광기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시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봉준호는 ‘설국열차(2013)’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활동 무대를 넓혔다. 백인, 흑인, 아시아인이 뒤섞였고 계급에 따라 머리 칸부터 꼬리 칸까지 엄격하게 구분된 열차 안의 질서를 깨려는 이들과 유지하려는 이들의 극렬한 싸움이 영화의 큰 줄기다. 봉준호 특유의 유머와 휴머니즘, 긴장감, 액션 그리고 환경과 계급 문제 등을 잘 녹여내 호평을 받았다.

어느덧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널리 알린 봉준호는 영화계와 첨예한 갈등을 빚던 넷플릭스 제작 영화 ‘옥자(2017)’로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 슈퍼돼지 옥자와 산골 소녀 미자의 우정과 모험을 다룬 이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날카롭다. 봉준호 영화세계의 이런 예리함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재로 이어졌다. 봉준호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정권을 돌이켜 “많은 한국의 예술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악몽 같은 몇 년간이었다”고 술회했다.

 

봉준호 아내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 영화 ‘지리멸렬’에 편집 스태프로 참여했던 시나리오작가 정선영이며 아들은 영화감독 봉효민이다. 봉 감독은 아내에 대해 “내 대본을 처음으로 읽는 독자”라며 “매번 대본을 끝내고 아내에게 보여줄 때마다 두렵다”고 말한 바 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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