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죽어 지냈다. 써 놓고 보니 이 말의 뜻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유년시절, 풀을 잔뜩 먹인 새하얀 옥양목 호청 이불을 덮고 자려면 목젖이 아파왔다. 풀이 빳빳하게 들어 칼날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호청 이불도 며칠이 지나면 풀이 죽어 흐물흐물해진다. 풀이 죽어 지낸 지가 오래되었다. 갈 데도 없어졌다. 1년 365일 일정이 빡빡해 ‘빈 깡통이 시끄럽다’고 자조하던 삶이 그리워진다. 모두가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새로운 취미를 선물했다. 동네 뒷산 등산이다. 산을 좋아한다. 그래서 ‘산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에 별명도 ‘여산(如山)’이다. 지리산 종주도 수없이 했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를 해본 남자와 그렇지 못한 남자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큰소리친다. 유학시절 미국의 로키 마운틴도 올랐다. 올여름에는 제자들과 후지산 등산이 예정되어 있다. 그만큼 거친 산행,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즐긴다.

3년 전 북한산 기슭, 단독으로 이사 온 것도 산을 좋아하는 본능이 한몫했다. 그러나 산은 이제 중장년층들의 놀이터다. 청춘들이 배낭을 짊어지고 순례하듯이 오르던 풍경은 이제 ‘그때를 아십니까?’에서나 볼 수 있다. 그땐 그랬다. 배낭에 텐트는 물론이고 담요에다 코펠, 버너, 식재료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올랐다. 20㎏쯤 되는 배낭을 메고 깔딱고개니, 눈물고개니 떠들며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올랐다.
코로나19가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두 달 동안 틈만 나면 뒷산에 올랐다. 초콜릿 몇 개를 달랑 주머니에 넣고 오른다. 북한산은 제법 악산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등산 재미를 준다. 산을 오르다 보면 군데군데 막걸리에다 어묵을 파는 좌판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2020년 봄, 이 땅에서 그런 풍경은 보기 어렵다. 2018년 3월 15일 이후 국내 모든 산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탐방로는 물론이고 대피소에서도 안 된다. 자연공원법이 국립, 도립, 시·군립, 지질공원을 포괄하므로 전국 모든 산이 해당된다. 1차 적발되면 5만원, 2차부터 10만원 과태료를 내야 한다. 환경부는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했다고 한다.
문제는 등산객이 가져온 소량의 술조차 마시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산에 올라 목이 마르거나 기온이 갑자기 내려갈 때 약간의 알코올은 적절한 대안이 된다. 그래서 서양의 경우 뒷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포켓 사이즈 위스키가 산행에는 필수품처럼 따라다닌다. 이른바 트레킹 위스키다.
실제로 산에서 음주를 막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온 국민이 금주해야 하는 무슬림 국가를 제외하곤 본 적이 없다. 술을 팔지 않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가져온 술까지 못 마시게 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산 정상에서 마시는 한잔의 막걸리나 독한 양주가 목젖을 타고 내릴 때의 그 짜릿한 기분을.
환경부의 설명은 코미디 수준이다. 음주사고를 핑계로 들었다. 그런 논리라면 교통사고가 많으면 차를 타지 말아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개탄할 정책이다.
통계를 보더라도 그렇다. 등산 전문지 ‘월간 산’은 환경부의 자료를 인용해 최근 6년 동안 국립공원에서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가 모두 64건으로, 국립공원 안전사고의 5%였다고 보도했다. 이 5%를 줄이려고 산행 중 금주령을 만들었다.
더구나 보도에 따르면 환경부는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한 번도 국민에게 의견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전체 등산객을 술취해 사고나 치는 미개인으로 취급하는 처사다.
적극적인 규제 완화, 즉 네거티브 시스템(금지된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허용하는)은 문재인 정권이 유난히 강조해 온 분야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타다 사태’에서 보듯이 규제 철폐가 정권의 이익과 충돌하면 없던 일이 된다. 국가의 미래는 선거철 표앞에서 관심 밖이다. 코로나19로 몹시 우울한 봄날, 흠뻑 땀 흘린 뒤 산에서 누리는 막걸리 한 잔의 행복을 되돌려줬으면 좋겠다.
김동률 서강대교수 매체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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