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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꿈섬 꿈산, 강화도 마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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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4-03 22:48:18 수정 : 2020-04-03 22: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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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가는 길 옆엔 철종 외갓집 / “하나의 인생에 하나의 꿈만 있길”

옛날에는 신촌 로터리 앞에 강화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지금 호텔 지으려고 공사 중인 곳 바로 옆 주차장 자리다. 대학 다닐 때 ‘엠티’ 간다고 거기서 모인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강화는 아주 멀게 느껴졌다. 길은 포장도 다 안 된 섬이었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강화는 아직도 꿈같은 섬이다. 강화도 하면 사람들은 벌써 신비스러운, 낭만적인 기운에 휩싸인다. 시인 함민복이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라고 짧은 시를 내놓았다. 강화에 살아서 아직 순수하게 지킬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강화대교는 좁디좁다. 바다라기보다 차라리 강을 건너는 느낌이다. 이 강을 못 건너서 몽골 원나라는 반도 산하만 도륙을 냈다던가. 최씨 무신정권이 원나라와 절충해서 강화를 떠나자 배중손의 삼별초는 강화를 떠나 진도로 가 항전을 계속했다. 최근 ‘유 선생’의 다큐멘터리를 보니, 삼별초는 다시 진도에서 류큐로 향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오키나와다. ‘영원한’ 항전을 꿈꾼 사람들이다. 바로 얼마 전에 이 류큐 왕국 상씨 왕조의 궁궐이 불에 탔다던가. ‘역사무상’이다.

강화읍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마니산 전등사 쪽으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불과 몇 년 전에도 선생 셋이서 이곳을 찾았다. 그래서 강화읍이 그렇게 친근했던가. 선생 셋이 함께 어디라도 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하, 영등포 이야기 쓴 작가 유영갑씨가 여기 강화에서 계속 뭔가를 쓰고 있다고도 했다.

전등사 가는 길 옆으로 강화도령 이원범 철종의 외갓집이 있다. 열아홉 살 나이로 밭농사 짓다 말고 한 나라의 군왕이 된 사람이다. ‘기구한 운명’이다. 세도가 안동 김씨 일족은 똑똑하지 못한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왕손으로 이런 치욕도 없다. 그래도 농사짓던 사람으로 힘없는 백성들을 염려하는 마음만은 품고 있었다 한다.

날은 흐리고 바람은 차고 빠르다. 길옆 산기슭에 핀 진달래꽃 빛깔이 짙다. 본래 진달래는 분홍빛이 옅다. 실핏줄이 드러나 보일 만큼 흐리고 옅어야 제 맛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복숭아꽃은 붉다. 옛날부터 꽃빛깔이 요염해서 사대부 집 담장 안에는 심지 않는다 했다. 길갓집 담장 위로 목련꽃이 벌써 시들어가고 있다. 내 산동네 그늘진 곳 목련나무는 아직도 몽우리를 꼭 다물고 있건만.

내비게이션은 열어놓지 않았다. 내비가 가라는 대로 가고 싶지 않다. 덕분에 길을 잘못 들었다. 화도면 화도초등학교 앞에 차를 세운다. 옛날 같으면 면소재지로 북적거릴만도 한데, 가게들은 전부 ‘개점휴업’만 같다. 코로나19의 위력은 여기서도 읽힌다. 다리를 건널 때 발열 체크를 했는데, 여기서도 ‘유증상자’는 보건소로 연락하라 한다. 위험천만 유행병이 번지는데 선거는 치러야 한다. 하수상한 세월이다.

마니산은 높지 않아도 자락이 넓다. 백두산과 한라산 중간쯤에 위치했고 단군이 쌓았다는 참성단이 있다. 단군은 단군왕검만이 단군이 아니요, 고조선 때 제정일치 수장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라 했다. 유서 깊은 산이다.

전등사는 그 산기슭에 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 아도 화상이 지었다고 한다. 충렬왕 때 정화궁주가 이 절에 옥등을 하사한 후에 등을 전해 주었다는 전등사(傳燈寺)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등불이란 카프 작가 김남천 소설 ‘등불’에 나오듯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지탱하게 해주는 신념이요, 진리 같은 것이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쳤다는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입구 쪽에 서 있다.

경내로 들어가니 대웅전은 지금 중창 중이다. ‘대웅’이란 깨달은 자를 가리킴이다. 대웅전 네 귀퉁이 처마에 전설 하나가 전한다. 절을 지을 때 목수가 주막집 여인네한테 빠져 재물만 탕진하고 여인네는 도망을 가버렸다 한다. 대웅전 처마 끝 네 귀퉁이에 ‘나부상’이 새겨져 있는 것은, 이 목수가 여인이 죄업을 씻기를 축원한 것이라 한다.

경내를 빙 둘러보고 허망하게 내려와 함허동천 쪽으로 향한다. 바람이 차고 맵다. 허공을 머금고 선 강화 섬의 바람을 맞으며 하나의 인생에 오로지 하나의 꿈만 가득하기를 내 스스로에게 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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