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공개된 삼성전자의 EUV(극자외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라인 구축 계획의 밑바탕엔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겨냥한 삼성의 ‘반도체 비전 2030’ 구상이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4월 내놓은 반도체 비전 2030의 골자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톱’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TSMC 추격
반도체 산업은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 그외 장비·소재 분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나 공장은 크게 종합반도체(IDM), 팹리스(설계 전담), 파운드리(생산 전담) 등으로 구분한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직접 모든 공정을 담당할 역량을 갖춘 종합반도체업체이지만, 설계 쪽 특화성이 강조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파운드리에 집중하고 있다. 데이터 저장용인 메모리 반도체 쪽은 삼성전자가 최강이지만, 고도의 연산·처리를 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 설계는 인텔 등 미국 업체가 노하우를 갖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평택 라인(사진) 구축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 추격에 가속도를 높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기업들과 손을 잡고 있는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50%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최근 10%대에서 정체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경기 화성과 평택에 연이어 EUV 파운드리 생산 라인을 구축하며 1위에 오른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는 EUV 공정 기술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EUV 공정은 파운드리 미세공정 한계 극복에 필수적인 기술로, 회로 선폭이 7나노미터(10억분의 1) 이하부터 적용되고 있다. 현재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파운드리 기업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TSMC뿐이다.
삼성전자는 화성 V1 라인 가동으로 올해 말 기준 7나노 이하 제품 생산 규모가 지난해 대비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에 평택 파운드리 생산라인까지 가동되면 이 제품 생산 규모는 더욱더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올해 들어 퀄컴 5G 모뎀칩 생산 계약을 따내는 등 구체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 올해 1분기 시스템 반도체 매출은 4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반도체 부문에서의 매출 비중도 처음으로 25%를 넘어섰다. 시스템 반도체뿐 아니라 메모리 제품도 평택 EUV 라인에서 생산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D램부터 EUV 공정을 전면 적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재용 부회장, ‘뉴삼성’으로 광폭 행보 나서
삼성전자의 이 같은 투자 결단은 이재용 부회장의 과감한 판단이 작용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평택 파운드리 라인 투자 발표와 관련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선 ‘기술 초격차’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며 “반도체 1등 기업이라는 자부심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6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당시 과감한 신사업 도전을 바탕으로 한 뉴삼성을 선언한 이후 이를 실천하기 위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기자회견 일주일 만인 지난 13일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을 만나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협업을 논의했으며, 코로나19가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지난 17일부터 2박3일간 중국 시안의 삼성반도체 공장을 찾았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는 문재인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판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를 신성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해 4월 문 대통령이 참석한 반도체 비전 2030 발표식에서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과감한 경영 행보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추가적인 투자 발표나 반도체 부문 인수·합병(M&A) 등의 깜짝 발표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중 무역분쟁 심화 와중에 경쟁사인 대만 TSMC가 최근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을 밝힌 만큼 삼성전자도 보폭을 더 넓힐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선 여기에 추가로 라인을 투자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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