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질문 하나를 던져볼까 한다. ‘그렇다, 아니다’ 정도로 답해보기를 바란다.
혹시 영화를 보다가 이해가 어려운 부분을 만났을 때, ‘감독의 의도가 뭐지?’란 생각을 해본 적 있나?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영화를 감독 중심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제작 과정에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배우와 여러 전문 인력들도 참여하는 것을 알지만, 왠지 영화감독이 책임자나 대표자, 리더로 인정하고 있어야 한다.
영화 ‘기생충’(2019)이 국내외에서 상영되고, 평가될 때도 봉준호 감독은 늘 중심에 있었다. 여러 시상식에서는 수상자로 단상에 올라 화제가 된 소감도 남기기도 했다. 아마 이런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애초부터 이렇게 영화감독이 중요하게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 영화가 처음 탄생했을 때는 1분이 채 안 되는 영화 촬영 과정에서 감독이라는 역할도 불분명했다. 이후 영화가 점차 길어지고, 허구화되면서 감독 즉 연출자의 업무가 분리되었으나, 현장 감독의 느낌이 강했다.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영화감독보다는 스타 배우나 제작사가 더 관심의 중심이 되는 경향이 있었다. 영화는 대중성과 오락성을 지닌 볼거리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카메라 뒤에 있는 스태프들에 대한 관심이 높기란 힘들었다.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1950년대 중반은 되어야 영화감독이 영화의 작품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다. 시작은 프랑스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상업영화는 물밀 듯이 들어왔고, TV도 대중화되면서 프랑스 영화계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영화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젊은 영화평론가들은 새로운 프랑스 영화를 갈망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법을 미국 상업영화에서 찾아냈다. 예술성보다는 오락성과 작품성이 강하다고 무시 받던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감독들을 발견한 것이다.

제작사도 다르고, 출연 배우도 다르지만, 뭔가 비슷한 영화들을 비교해보니, 공통점은 바로 감독이었다. 영화는 결국 영상물인데, 영상화 콘셉트를 잡아 완성하는 과정에서 선택자의 역할을 맡은 이가 바로 감독이라는 점에 새삼 주목했다. 예를 들어 카메라의 위치를 선택하고, 배우의 연기 톤을 지시하는 등 협업 현장에서 최종적으로 OK를 외치는 것이 바로 감독이었다.
프랑스 평론가들은 상업 영화 제작 시스템 내에서도 자신만의 개성 즉 세계관과 영상 스타일 등을 드러내고 있던 감독들은 ‘작가’로 명명하고 재평가하면서, 위기에 빠진 프랑스 영화가 감독을 중심으로 새로운 영화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론가 중 일부는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고, 젊은 영화감독들이 과감하게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났다.
영국, 미국 등지의 평론가들도 영화에서 감독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기존 감독 중 ‘작가’를 찾아내어 재평가하는 열풍에 동참했다. 거장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옛 감독 중 상당수는 이 시기에 재평가받은 감독이다.
예를 들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미 스릴러영화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B급 영화감독으로 엔터테이너의 인식이 강했는데, ‘작가’로 재평가받으면서 거장, 예술가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대중성과 상업성으로 인해 저평가되던 스릴러, 뮤지컬, 서부 영화 등의 감독들이 재평가받았다.
이후 작가로서의 감독 역할을 강조했던 작가주의는 협업 능력, 현실에 대한 관심 등등 평가 기준이 다양화되고, 영화를 평가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더 나아가 감독 이외에도 영화 제작에 참여한 이를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방법으로 확대되었다.
요즘엔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언제나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감독의 의도가 뭐지?’라고 물을 만큼 당연하게 여긴 감독의 중요성도 마찬가지다. 물론 감독을 비롯해 여러 전문가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젠 당연한 얘기다.
영화를 볼 때, 감독을 비롯해 영화를 만든 이들을 고려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감상 방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은 누구인지도 잠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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