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크로(Velcro)는 사이즈에 맞게 재단되어 있으니 알맞은 위치에 부착해주시면 됩니다. 감기와 코로나 모두 조심하세요!”
지난달 말 시 출연기관인 서울시50플러스재단으로부터 받은 상자를 여니 보건용 마스크(KF94)와 투명필름 각각 2장, 이른바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 여러 개와 함께 이 같은 글이 적힌 쪽지가 눈에 띄었다.
앞서 기자는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돕는 ‘입술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 제작 봉사를 하겠다며 재단 측에 연락을 취해둔 터였다. 재단은 지난 8월 자원봉사자 100명의 참여로 투명 마스크 1500장을 제작해 청각장애인이 다니는 학교 등에 전달했으며, 이번에는 114명의 참여로 다시 1700장을 제작·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만든 투명 마스크를 누군가 쓸 것이라 상상해보니 제작 과정 하나하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동봉된 라텍스 장갑을 끼고 본격적으로 마스크를 만들기 전 재료 놓일 자리를 소독하는 일까지 모든 과정에서 위생을 유지하고자 최대한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도려내고 붙이면 탄생하는 투명 마스크… ‘똥손’ 기자는 2시간 들이고도 실패
투명 마스크는 수어(手語)를 하는 이들이 착용한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는 말하는 이의 표정이 더해져야 보는 이가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마스크를 제작할 때는 투명필름이 붙게 될 한가운데를 정확히 타원으로 도려내는 일이 중요했다.
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재단이 보내준 도안의 도움이 컸다. 보건용 마스크와 같은 크기의 도안 한가운데는 타원이 그려져 있는데, 먼저 이를 가위로 도려내야 한다. 이어 뚫린 부분을 중심으로 보건용 마스크에 대고 그대로 연필로 그으면 된다. 이렇게 보건용 마스크에 그려진 타원을 가위로 도려내면 전체 과정의 절반을 수행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마스크 안에 투명필름을 붙여 뚫린 타원을 메꾸기만 하면 된다.
기자의 손이 무딘 탓인지 접착 역할을 하는 벨크로를 삐뚤게 붙이는 바람에 투명필름을 제대로 부착할 수 없었다. 결국 기자는 2시간여를 들이고도 투명 마스크 만들기에 안타깝게 실패했다. 필름이 삐뚤게 붙여진 실패작을 보니 재료를 보낸 재단 측과 완제품을 기다렸을 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다른 봉사자들은 어땠을까?
◆봉사자들의 소감… “더 많은 분이 참여하기를” “도움이 됐으면” “다음에도 참여할 것”
어머니를 통해 재단을 알게 돼 이번 봉사에 참여했다는 이신정(47)씨는 최근 통화에서 “봉사라는 의미를 담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내가 만든 마스크는 다소 매끄럽게 완성되지 못해 쓰시는 분께서 불편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재료를 받자마자 마스크를 만들어 이튿날 보냈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에서 투명 마스크가 일반 제품보다 비싸게 팔리는 것을 본 뒤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개인이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회사 등 단체에서 많은 인원이 힘을 보태 더 많은 투명 마스크를 만들면 좋겠다”고 바랐다.
지난 8월에 이어 두 번째 마스크 제작 봉사에 참여한 곽정숙(64)씨는 애초 투명 마스크가 왜 필요한지 몰랐다고 한다. 곽씨는 그러다 ‘정말 있어야 하겠다’고 깨닫고 처음 봉사에 참여했고, 제작 경험이 있었던 만큼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한번 힘을 보탰다고 통화에서 밝혔다. 평소에도 여러 봉사를 해왔다는 그는 “뒤늦게 이런 마스크의 필요성을 깨달은 게 죄송하기도 했다”며 “내가 제작한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창환(56)씨는 손수 제작한 투명 마스크를 착용할 이들에게 한마디 남겨 달라는 부탁에 감정이 북받친 듯 10여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마스크가 필수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이겨내야 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애로에 공감된 듯 보였다.
김씨는 대신 “솜씨가 서툴러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더라”며 “‘더 잘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아쉬웠다”고만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마스크를 다시 제작할 기회가 생기면 참여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기꺼이 그럴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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