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비교 통사/미야지마 히로시/박은영 역/너머북스/2만5000원
한국과 중국, 일본. 동북아시아의 이들 세 나라는 영향을 주고받은 오랜 문화 교류는 물론 침략과 방어, 식민지배 등의 아픔으로 역사의 애증이 교차되는 관계다. 지금도 세 나라는 과거사와 경제, 국방, 체제 등 여러 분야에서 각축하고 있다. 하지만 한·중·일 학계에는 세 나라 역사를 비교 연구한 사례가 거의 없다. 더욱이 한·중·일을 하나의 관점에서 엮은 역사서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일본인으로 도쿄대 교수직을 박차고 한국으로 학문 이민을 온 역사학자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72)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한중일 비교 통사’는 3국 비교사를 통해 동아시아 세계를 일체로 파악해 새 동아시아 역사상(像)을 모색한 역작이다. 1부는 14세기에서 19세기 전반까지의 한·중·일 통사로, 2부는 동아시아 연구사·정치 이노베이션·족보 비교 등 통사에서 도출된 핵심 주제별로 들여다봤다.
전작인 ‘나의 한국사 공부’에서 동아시아 전통사회를 소농사회라는 개념으로 파악해 한·중·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은 저자는 이 책에선 베트남, 류큐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전역으로 시야를 넓혀 소농사회론을 체계적으로 논증했다.
히로시 교수는 조선왕조 성립을 계기로 본격화된 한국의 정치혁신은 중국 모델을 수용하면서도 한국만의 독자적 양상을 띠고 전개됐다고 설명한다. 특히 무엇보다 중국이 당·송 교체기에 구사회질서가 완전히 와해됐다면, 한국의 경우 고려-조선왕조 교체에도 구사회질서가 붕괴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대비한다.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많지 않은 조선왕조 500년 존속 비결에 대해서 저자는 “왕권과 신권의 충실한 견제”라고 판단했다. 16세기에 형성된 조선의 정치체제는 왕권과 재상권 대립을 축으로 한 양극 구조에 사림이라는 또 하나의 정치세력을 더함으로써 보다 안정된 정치구조가 형성된 것으로 봤다. 즉 신권이 재상권과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 낭관권으로 분리됨으로써 왕권과 신권의 균형이 맞춰졌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막부체제로 인해 정치혁신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보았다. 특히 당대 동북아의 가장 선진적인 정치이론 체계였던 주자학을 받아들인 중국·한국과 달리 일본은 교양 차원이나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바람에 왕권과 정권을 분리하지 못해 메이지유신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고 분석했다.
조정진 선임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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