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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가 마신 술이 백년전쟁 영웅? [명욱의 술 인문학]

입력 : 2020-12-19 19:00:00 수정 : 2020-12-23 02: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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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술이야기(하)
영국과 프랑스 백년전쟁에서 영국군 영웅으로 활약한 존 텔버트 장군은 이후 자신의 이름을 와인에 남긴다. 바로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마신 와인 샤토 딸보(Chateau Talbot)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 구국 영웅이다. 백년전쟁 당시 패색이 짙어가던 프랑스를 구했고, 샤를 7세 대관식까지 도와준다. 프랑스에 잔 다르크가 있다면 영국에는 누가 있었을까? 백년전쟁 당시 잔 다르크의 라이벌이었으며,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프랑스를 궁지로 몬 인물, 영국의 아킬레스로 불리던 존 탤벗(John Talbot) 장군이다.

영국군 총사령관이었으며, 프랑스 귀족을 포로로 잡았다. 무엇보다 당시 프랑스 왕세자였던 샤를 7세가 있던 오를레앙 포위 전에서 프랑스를 절체절명 위기까지 빠트린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잔 다르크.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탤벗 장군을 처절한 전투 끝에 물리치고, 포로로 사로잡는다. 탤벗 장군은 4년여 포로생활을 한 뒤 포로교환으로 다시 영국군 품에 돌아간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백년전쟁 마지막 전투이자 와인 산지인 보르도 탈환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르도는 영국 최후 보루와 같은 곳이었다. 이미 200년 넘게 지배를 하고 있던 곳이었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대부분 영국으로 수출하고 있었던 시대. 하지만 1451년 이 지역마저 영국은 프랑스에 빼앗겨 버린다. 이러한 상황에 영국 왕실에 보르도 시민들마저 프랑스로부터 이 지역을 탈환해 달라는 요청이 온다. 영국이 진다면 자신들의 고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탤벗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해 영국군은 원정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보르도 시민들은 프랑스 수비대를 내쫓고, 영국군을 열렬히 환영한다. 이 당시 보르도인의 정체성은 프랑스인보다는 영국인에 더 가까웠다. 또 프랑스 왕실이 잦은 전쟁으로 와이너리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한 것도 한몫했다.

이후 백년전쟁 마지막 전투가 이뤄진다. 보르도에서 약 50㎞ 떨어진 카스티용이란 곳에서 벌어진 카스티용 전투(Battle of Castillon). 당시 잔 다르크를 사로잡고 죽음으로 몰아낸 부르고뉴는 영국을 배신하고 다시 프랑스 왕조와 연합해 이곳으로 함께 쳐들어온다. 결국 최후까지 결전한 탤벗 장군은 70세 나이로 이곳에서 전사한다. 무려 40년 가까이 전장에서 보낸 그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와 영국의 116년간 전쟁은 마무리가 된다. 와인으로 시작해 와인으로 끝난 백년전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보르도인은 자신들의 고향을 탈환해 주러 온 탤벗 장군에 대한 고마움을 남기고자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그의 이름을 넣은 와인 샤토 탈보(Chateau Talbot)다. 2002년 당시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그의 연인과 함께 마신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와인이다. 보르도 최고급으로 꼽히는 그랑 크뤼 4등급에 속한다.

결국 술로 시작한 술로 끝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하지만 영웅은 이렇게 술 이름으로 남게 되고, 이 와인은 보르도 최고 와인 등급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와인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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