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거꾸로 매단 트리가 제대로 된 전통”… 독일인 말 사실일까?

입력 : 2020-12-29 10:00:00 수정 : 2020-12-28 20:11:33

인쇄 메일 url 공유 - +

⑩ 크리스마스 트리의 비밀
전나무 삼각형, 기독교 삼위로 가르쳐
獨 등서 집 공간 맞춰 거꾸로 매달아
역사가들은 고대 풍습 기독교화 해석

트리 전통이 美대륙 상륙땐 낯설어해
1600년대엔 장식하면 벌금 부과키도
현재는 초대형트리 설치, 전 세계 이목
텍사스주 프레데릭스버그에 있는 한 독일식 육류 전문점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거꾸로 걸어놓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는 프레데릭스버그(Fredericksburg)라는 도시가 있다. 인구가 1만1000명 정도 되는 이 작은 도시의 이름은 1846년에 프로이센 왕자 프레데릭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독일계 이민자들이 모여 생긴 곳이다 보니 독일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파스(Opa’s)라는 독일식 훈제고기 전문점이다. 정통 독일식 레시피로 만든 소시지, 햄, 육포 등을 판매하는 이곳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약간 특이한 장식을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바로 거꾸로 걸린 크리스마스트리다.

알다시피 크리스마스트리는 예수가 태어난 성탄절을 기념해서 집안, 혹은 야외에 상록 침엽수를 세워놓고 가지에 각종 장식을 하는 기독교 풍습으로, 길쭉한 원뿔 모양으로 잘 자란 전나무 등의 침엽수 끝에는 흔히 예수의 탄생을 상징하는 별을 걸어둔다. 그런데 독일 음식 매장에서는 왜 그런 트리를 거꾸로 매달아두었을까? ‘크리스마스트리는 나무를 거꾸로 매달아두는 것이 제대로 된 전통’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의 말이 사실일까?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를 교회의 중요한 절기로 생각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성경에 등장하는 ‘절기’가 아니다. 예수가 태어나는 장면은 신약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성경 어디에도 ‘예수가 탄생한 날을 기념해서 지키라’는 말이 없다. (이에 반해 예수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기념하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교에 물든 기독교(Pagan Christianity)’의 저자 프랭크 바이올라는 현대 기독교에서 지키는 많은 풍습, 예배 방식이 사실은 기독교가 로마를 거쳐 유럽 전체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생겨났음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원래 중동지역에서 출발한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도착했을 때 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미 많고 다양한 이교(pagan, 비기독교) 신앙과 전통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의 전통은 물론 북유럽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수백, 수천 년 동안 지켜오던 각종 절기와 토속신앙이 있었는데 단지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그동안 따르던 전통을 버리는 건 불가능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추석 명절은 지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유럽인들이 지키던 절기는 토속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유럽인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치던 초기 사제들은 전통적인 절기를 금지하는 대신 기존의 절기에 기독교적 해석, 혹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현지화 전략’을 선택했다. 유럽의 각 도시와 국가는 물론 각종 질병과 직업군에 붙은 가톨릭의 ‘수호성인’이라는 것도 성경에는 근거가 없지만, 기독교가 도착하기 전에 사용하던 풍습의 기독교화된(Christianized) 버전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렇게 유럽에 존재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winter solstice) 풍습이다. 난방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겨울이 바닥을 치고 다시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는 북반구의 여러 문명에서 중요한 절기였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 시기에 농신제(Saturnalia)라는 축제를 했는데, 이제 겨울이 끝나고 만물이 생장하는 봄, 여름이 온다는 기대를 표현하기 위해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가진 침엽수로 가정과 신전을 장식했다. 북유럽인들도 다르지 않아서, 켈트족이나 바이킹도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상록 침엽수로 동지를 기념하는 장식을 했다.

기독교의 한 전설에 따르면 잉글랜드의 성 보니파스 선교사가 지금의 독일 지역을 여행하다가 떡갈나무를 숭배하는 지역 주민들을 보고 분노해서 나무를 잘라냈더니 그 자리에서 전나무가 솟아났다고 한다. 그걸 본 보니파스는 사람들에게 전나무의 삼각형 모양이 기독교의 삼위(성부, 성자, 성령)를 가리킨다고 가르쳤고, 그렇게 해서 기독교의 상징이 된 나무가 12세기에 이르면 독일과 폴란드, 동유럽 지역에서 (좁은 집의 공간에 맞춰) 집의 서까래에 거꾸로 매달려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이 전설이 고대 유럽의 이교 전통이 기독교의 전통으로 세탁된 전형적인 경우로 해석한다. 이미 고대 게르만인들은 한겨울에 침엽수를 거꾸로 매달아두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 풍습이 가장 먼저 기독교화된 곳도 독일 지역이었고, 특히 이 지역에서 발전한 루터교(Lutheranism)가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고, 그래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이라는 얘기도 민간에 많이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 폴란드 외의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장식해도 거꾸로 매다는 풍습은 없었던 듯하다.

독일계 이민자들이 크리스마스트리 전통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을 때만 해도 청교도의 후손들은 독일 지역의 풍습을 마치 이교도의 우상숭배처럼 낯설어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잘생긴 나무에 장식을 하고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한국문화의 서낭당 나무와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1840년대까지도 영국계인 주류 미국인들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독일계의 이교적 풍습이라고 여겼다.

거꾸로 크리스마스트리는 서서히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독일식 크리스마스 전통을 좋지 않게 보는 영국계 미국인들의 생각은 뿌리가 깊다. 영국 개신교의 뿌리인 청교도 혁명을 일으킨 올리버 크롬웰은 성탄절에 캐럴을 부르고 나무를 장식하며 축제를 하는 것을 “이교도적 전통”이라고 비판했고, 아직 식민지 시절이었던 1600년대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집에는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트리는 미국 기독교 문화의 일부로 빠르게 흡수되었고, 지금은 백악관의 크리스마스트리, 록펠러센터 앞에 설치되는 초대형 트리는 전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크리스마스트리가 미국 문화의 일부로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했었다.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인들은 크리스마스트리에 집에서 만든 장식물을 달았지만, 독일계 이민자들은 본국에서 하던 대로 과일과 쿠키, 사탕 같은 간식거리를 매달았고, 일부 이민자들은 오랜 전통을 따라 서까래에 나무를 거꾸로 매달기도 했다. 그들의 가정을 방문한 미국인들이 깜짝 놀란 건 당연하다. 프레데릭스버그의 독일식 육류가게가 크리스마스트리를 거꾸로 달아놓는 것은 그 오래된 독일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거꾸로 크리스마스트리’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소 진부해보이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모습을 벗어나 새로운 장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도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는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에서 이란계 아티스트 쉬라제 후쉬아리가 트리를 거꾸로 매다는 설치작품을 선보였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거꾸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퍼뜨리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고대 유럽 전통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
  • 조이현 '청순 매력의 정석'
  • 에스파 지젤 '반가운 손인사'
  • VVS 지우 '해맑은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