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고교 서열화 해소 불발 땐 2025년 학점제 시행 차질 우려 [심층기획 - 잇단 '자사고 지정취소' 위법 판결 파장]

, 세계뉴스룸

입력 : 2021-03-08 06:00:00 수정 : 2021-03-08 13:20:22

인쇄 메일 url 공유 - +

입시교육 위주 운영에 ‘귀족학교’ 논란
해운대·배재고 등 1심서 승소 기사회생
내년 헌재 결론 따라 존폐 여부 갈림길
“절대평가·평준화 담보돼야 학점제 가능
오락가락 정책에 결국 학생들만 피해”

‘남을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들이 최근 자사고 지정취소 1심 소송에서 잇달아 승소하며 폐지 위기를 일단 모면했지만 존폐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대법원까지 여정이 남은 데다가 교육당국이 2025년 자사고·외고·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자사고 등은 이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이고 지정취소 1심 소송이 진행 중인 곳도 많아서 향후 법적 공방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고교학점제 도입까지 맞물려 있어 교육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양한 교육 실현’ 내세웠지만 ‘귀족학교’ 논란… 20여년 만에 존폐위기

7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금 자사고의 전신은 2002년 등장한 ‘자립형사립고’다. 자립형사립고는 정부 지원금 없이 독립된 재정과 교과과정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학생 선발의 자유를 가진다. 2002년 민족사관고와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가 자립형사립고로 전환됐고 이후 해운대고, 현대청운고, 상산고 등이 추가 지정됐다. 2010년 이명박정부가 학교의 자율성을 더 확대한 자사고 모델을 도입하면서 기존 자립형사립고는 모두 자사고로 전환됐다. 지난해 기준 전국에 36개교가 있다.

자사고 도입 목적은 당초 ‘다양한 교육실현’이었지만 입시 교육 위주로 운영되면서 또 다른 특목고로 변질해 고교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왔다. ‘귀족학교’, ‘특권학교’란 별칭까지 붙으면서 공교육 강화를 위해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던 중 2019년 서울 8개 등 전국 10개 자사고가 운영성과평가에서 기준 점수에 못 미쳤다는 이유로 교육당국으로부터 지정취소 판단을 받았고, 해당 자사고들이 불복 소송을 제기하면서 현재 법정 다툼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고에 이어 지난달 서울 세화·배재고도 지정취소 관련 1심에서 승소했다. 표면적으로는 자사고들이 1승을 거둔 모양새지만, 해당 판결은 어디까지나 ‘지정취소 처분’에 국한된 것이어서 해당 학교들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정부는 2025년 3월1일자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고교학점제 도입에 맞춰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 유형을 완전히 없애는 내용이 골자다. 결국 이번 지정취소 관련 판결에서 승소하더라도, 4년간의 ‘시한부 운명’인 셈이다. 유은혜 부총리도 지난달 세화고·배재고 1심 판결 후 “이번 판결은 절차에 관한 것이지 자사고 폐지 정책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관건은 헌법소원 결과다. 자사고·국제고 24개 학교법인은 지난해 5월 정부의 일반고 일괄전환 시행령 개정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해 내년 중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이들은 “교육부 시행령은 헌법상 보장된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고 교육에 관한 것은 법률로 정하도록 한 교육제도의 법정주의에도 위배된다”며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위해 정부가 자사고 설립을 권장했다가 폐지 정책을 들고나온 것은 신뢰 보호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사고 폐지 안 되면 고교학점제도 ‘위태’

정부의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 정책은 고교학점제와 맞물려있다. 헌법소원 결과가 자사고에 유리하게 나올 경우 고교학점제 도입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고교학점제는 대학교 학점제처럼 학생이 적성과 진로에 따라 다양한 교과목을 선택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입시 중심·서열화된 교육이 학생 성장 중심·수평적 교육으로 전환될 것이라 보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자사고 폐지 목적과 궤를 같이하는 정책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자사고 폐지가 선행되지 않으면 고교학점제를 정상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고교 운영과 대입이 별개로 다뤄질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두 가지가 깊이 얽혀 있다”며 “절대평가 방식과 평준화가 담보돼야만 쏠림현상 없이 고교학점제가 도입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자사고·외고 일반고 전환에 차질이 생겨 고등학교들 사이에 평준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고교학점제는 시행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헌법소원 결과에 따라 교육정책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인 만큼 향후 교육 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교육학과)는 이 같은 혼선으로 인한 피해는 학생들이 고스란히 덮어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사고 폐지, 고교학점제가 교육 격차를 완화할 것이란 연관성이 충분히 입증된 것도 아닌데 선제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지도 않고 무작정 밀어붙이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어 “정권이 끝나면 모든 게 다 뒤집힐 가능성도 상당한데, 이렇게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결국 피해는 학생들이 입는다”며 “교육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일관성을 잃으면 학생들만 혼란스럽고 힘들어진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이 7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공교육 수준 제고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자사고 폐지보다 공교육 수준부터 끌어올려야”

 

“교육 격차를 완화하는 최상의 방법은 단순히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폐지하는 게 아니라 자사고를 뛰어넘는 교육 프로그램을 공립학교에 가능한 한 많이 보급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받고 싶어하는 자사고의 질 높은 교육을 공립학교에 퍼뜨려 공교육 수준을 끌어올려야죠.”

 

미시간대 객원교수와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연구 교수 등을 거쳐 교육과혁신연구소를 운영하는 이혜정 소장은 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육 격차 해소 방안으로 일반고 혁신을 통한 상향평준화를 제안했다. 자사고를 폐지해 하향평준화식 격차 해소를 달성하는 건 협소한 해결방안이라는 맥락에서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에는 상위권을 위한 교육 모델은 있지만 중하위권은 교육정책에서 거의 버려진다. 좋은 학군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낙후된 지역의 학교들은 상위 30% 학생만 생활기록부를 챙기고 나머지 70%는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며 “모두가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인 교육서비스가 상위권에만 집중되는 동안 중하위권 학생들은 ‘공부를 못하는 나 자신’만 탓하고 있는데 이건 시스템의 잘못이지 개인 탓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교육 양극화와 사교육 문제를 잡기 위해선 ‘학교효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효과란 외적 요인 외에 학교 교육 그 자체가 학생에게 유의미한 효과를 내는 것을 뜻한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 자사고들은 선발 효과에 지나치게 의존해 이미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우수한 입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게끔 한다. 공립학교에서도 학교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우니 사교육이 활성화됐다”며 “자사고는 선발 효과에 의존해온 과거를 반성해야 하고 공교육도 학교효과를 일으키는 데 집중해 어려운 환경의 소외된 아이들이 학교 교육만으로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학교효과 유발을 위한 공교육 수준 제고 방안으로 제주교육청과 대구교육청에서 한국어화해 도입한 IB(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 시스템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B 교육이란 전과목에서 논·서술식 수업을 하고 평가 역시 논·서술식으로 진행하는 국제 공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스위스 비영리 교육재단 IBO가 1968년에 개발해 158개국에서 범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와 대구 교육청에서 2019년부터 운영 중이다. 

 

IB 교육을 두고 일각에서는 ‘귀족교육’이라고 비판하지만 이 소장은 “IB 교육이 귀족교육이라는 건 아직 한국어화가 되지 않아 발생하는 부수비용이 있어 생기는 오해”라며 “실제로 제주와 대구의 시범학교에서는 공립 무상교육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외되거나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도 단지 남의 생각을 주입받는 교육이 아닌 스스로 사고하며 성장하는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격차를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2028년 이후 논술형 수능의 현실적 모델로 ‘투트랙 입시’를 제시했다. 장기적으로 전과목 논·서술 입시를 지향하되 과도기 모델로 기존의 수능과 병행하는 투트랙 입시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기존 수능 중심 고교와 IB 교육 고교를 양립하게 한 후 어떤 교육을 받고 싶은지는 학생과 학부모가 선택하게 하고 기존 수능을 수능1 유형으로, IB식 시험을 참고한 논서술 수능을 수능2 유형으로 해 한 가지에 응시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소장은 “전과목 논술형으로 치르는 수능2 유형은 고교 3년간 이 시험 방식에 맞게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고교와 운영 방식이 달라지므로 두 교육방식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며 “기존 수능시험과 논술형 수능시험을 섞어 보게 하는 건 학생들에게 인지부조화만 일으킬 뿐이므로 과도기에는 두 유형을 분리해 어느 쪽이든 대입에 활용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논술형 수능의 경우 기존보다 채점의 공정성이 훨씬 중요할 텐데 아직 우리 교육계가 경험이 부족하니 우선 공신력이 검증된 IB 시스템에서 전문성을 쌓은 우리 교사들의 경험을 활용하여 차차 우리만의 채점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계의 앞으로의 과제에 관해 묻자 이 소장은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교육의 미래에 대한 중장기적 고민을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 명종 때 과거시험에 ‘교육의 미래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가 출제됐었다. 그만큼 예로부터 교육의 미래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 당국은 교육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다. 공론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절대평가를 몇 과목 도입할지, 정시와 수시 비율 숫자를 어떻게 할지 등 눈앞의 문제를 두고 국민들끼리 싸우도록 부추기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은 정치적으로 이용돼선 안 되는데 지금은 교육용어들조차 정치적인 의도로 오염된 것이 많다”며 “교육 당국이 지금이라도 교육의 미래를 순수하고 진지하게 고민한 후 구체적 목표와 실현방안을 제시해 균형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세이마이네임 히토미 '사랑스러워'
  • 세이마이네임 히토미 '사랑스러워'
  • 있지 예지 '완벽한 미모'
  • 아이유 ‘사랑스러운 매력’
  • 영파씨 지아나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