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Public Opinion)/월터 리프먼 지음, 이동근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2만5000원
여론은 “편협한 해석의 집합”
민주주의 근간 뒤흔든 정치사상가 월터 리프먼의 전언
가짜뉴스로 덮인 탈진실 시대, ‘진정한 의미의 여론’ 고찰 필요
20세기 최고의 정치사상가 월터 리프먼이 1922년에 펴낸 Public Opinion은 여론의 현대적 개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론의 본질과 여론 형성의 메커니즘을 면밀하게 밝히고 여론 형성 과정에 미치는 언론의 역할을 날카롭게 논의한다. 리프먼은 이 책으로 196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탈진실(post-truth) 시대다. 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뜻한다. 접두사 ‘post’는 ‘이후’가 아니라 진실이 무의미할 정도로 퇴색됐다는 의미다. 이런 경향은 나날이 짙어졌다. 우리는 오늘도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이 비합리적인 의견을 전파하는 것을 마주한다.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거짓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한다. 악성 루머나 왜곡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퍼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인포데믹스(infodemics)는 그 어떤 전염병보다도 빠른 속도로 일상에 틈입한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한 세기 전, 월터 리프먼은 같은 물음을 던졌다. 우리는 언론을 신뢰할 수 있는가? 여론은 과연 합리적인가? 리프먼에 따르면 언론은 실제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여론은 합리적인 의견의 합이 아니라 편협한 해석의 집합일 뿐이다. 그는 언론을 신뢰하지 않았다. 여론이 보통 사람들의 지혜라고 불리는 것에도 의문을 가졌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들의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지적했다. 당시 민주주의자들이 가진 믿음에 커다란 균열을 남긴 것이다. 물론 지난 한 세기 동안 언론을 비롯한 사회 제도,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은 크게 변화했다.
누구나 양질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언론은 왜곡된 상을 제공하고 여론은 불확실한 정보에 휩쓸린다. 리프먼의 사상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단단한 용골(龍骨)이다. 이제 리프먼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여론’이 무엇인지 새롭게 고찰해야 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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